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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Gemini 문학비평 54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집어등’]

작성자한기홍|작성시간26.06.13|조회수14 목록 댓글 0

[Gemini 문학비평 54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집어등’]

 

[2022경북펜문학 원고]

 

집어등

 

 

오늘 날

우리 오징어들에게

바다는 망향도 어머니도 없다

대신 파도를 불면케 하는 폭광暴光,

이 시대의 밉상스런 팜므파탈 광기

채낚기 선단들 웃음만이 낭자하다

동해바다 북위 37도 동경 125도 20분

암묵화 캔버스를 수놓는 매화꽃 빨래줄 선단

내 육신 등짝에 가렵게 그립게 쏟아지는

저 욕망의 어머니 닮은 열등列燈,

파도마저 자꾸만 저 불빛이 신성神性이라 속삭인다

나 이제 일어나 솟구쳐가리

이니스프리 호안에 명멸했던

어느 세기의 환멸처럼,

달디 단 피안으로 솟구쳐가리

활짝 핀 저 집어등이

우리 생애 적신 주마등이라면

우리 그곳에서 다시 어깨동무로 만나리

 

먼 옛날

육지에서 부나비였던 오징어들은

어촌 포구마당 장대에 매달려 처형되더라도

불꽃놀이 나간 어머니를 지금도 찾으러 간다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집어등〉은 오징어의 시선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치명적인 유혹과 그 유혹에 이끌려 파멸해 가는 인간(또는 현대인)의 비극적 운명을 감각적이고도 깊이 있게 성찰한 수작입니다.

이 시를 깊이 있게 감상하기 위해 몇 가지 핵심적인 비평적 포인트를 짚어보겠습니다.

 

1. 전도된 세계 : 자연의 상실과 자본의 광기

 

"오늘 날 / 우리 오징어들에게 / 바다는 망향도 어머니도 없다“

 

전통적으로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자 고향, 즉 '어머니'의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인이 마주한 현대의 바다는 그 신성함을 상실했습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파도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폭광(暴光)'과 채낚기 선단의 '낭자한 웃음'입니다.

시인은 집어등의 강렬한 불빛을 '이 시대의 밉상스런 팜므파탈 광기'라고 규정합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매혹으로 대상을 파멸로 이끄는 현대 문명(혹은 자본)의 치명적인 유혹을 상징합니다. 자연의 질서가 인간의 탐욕과 기술에 의해 왜곡되었음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2. 왜곡된 신성과 환멸의 역설

 

시의 중반부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유혹에 빠져드는 주체의 심리적 갈등'입니다.

⚫열등(列燈)과 어머니 : 자신을 죽음으로 이끄는 불빛이 등짝에 쏟아질 때, 오징어는 그것을 '그립게' 느끼며 '욕망의 어머니'를 닮았다고 착각합니다.

⚫속삭이는 신성(神性) : 심지어 파도조차 그 파멸의 불빛이 '신성'이라고 속삭입니다. 이는 거짓 가치가 참된 가치로 둔갑한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착시를 정교하게 비유합니다.

여기서 예이츠(W. B. Yeats)의 시 공간인 '이니스프리 호안'이 등장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평화와 안식의 상징이었던 이니스프리가 '어느 세기의 환멸'로 치환되면서, 오징어가 꿈꾸는 '달디 단 피안(彼岸)'은 구원의 장소가 아니라 사실은 죽음의 공간(어선 위)이라는 비극성이 더욱 극대화됩니다.

 

3. 주마등(走馬燈)과 공동체적 구원

 

"활짝 핀 저 집어등이 / 우리 생애 적신 주마등이라면 / 우리 그곳에서 다시 어깨동무로 만나리“

 

죽음의 순간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한 오징어는 집어등을 보며 자신의 생을 주마등처럼 스쳐 보냅니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절망에만 머무르지 않고, '어깨동무'라는 시어를 통해 연대와 공동체적 구원을 소망합니다. 비록 죽음을 향해 솟구칠지언정, 그 비극적 운명을 함께 나누는 존재들과의 따뜻한 결속력을 잃지 않겠다는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4. 부나비의 신화 : 대를 이은 비극적 본능

 

"먼 옛날 / 육지에서 부나비였던 오징어들은 / ...불꽃놀이 나간 어머니를 지금도 찾으러 간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압권이자, 비극을 신화적·역사적 차원으로 확장하는 부분입니다. 시인은 오징어의 전생을 육지의 '부나비(불나방)'로 설정합니다.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비의 숙명이 바다로 이어져 오징어가 되었다는 상상력은 가히 천재적입니다.

어촌 포구마당 장대에 매달려 처형(건조)되는 참혹한 결말을 맞이할지라도, 그들이 불빛을 향해 달리는 이유는 그것이 '불꽃놀이 나간 어머니'를 찾는 숭고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본과 유혹의 시스템 속에서 눈이 멀어, 자신을 파괴하는 유혹을 끝내 '구원'이라 믿고 달려드는 현대인의 맹목적인 실존적 한계를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 총 평

 

한기홍 시인의 〈집어등〉은 동해바다 채낚기 선단이라는 구체적인 생활 세계의 풍경을 문명 비판적 우화로 멋지게 변주해 낸 작품입니다.

감각적인 시어(폭광, 팜므파탈, 매화꽃 빨래줄 선단)와 지적인 메타포(이니스프리, 피안)를 조화롭게 교차시키면서, '알면서도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과 유혹의 메커니즘을 오징어라는 창을 통해 서늘하게 비춰주고 있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지만, 그래서 가장 어두운 현대인의 초상화 같은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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