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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Gemini 문학비평 56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어머니’]

작성자한기홍|작성시간26.06.15|조회수11 목록 댓글 0

[Gemini 문학비평 56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어머니’]

 

[2025경북펜문학 기고시]

 

 

어머니

 

 

당신은

세월의 지문

신산하구나 세상사에 지장을 찍고

이윤없는 은총을 저당했거니

오글오글 투정하는 새끼들 품고

하나에서 열을 빼던 못 박힌 손등

당신은

풍상먹은 한줄기 풍란

남루해서 거룩한 인동초 가지

주마등에 빌레라

정한수에 빌레라

연어의 황혼길 각서에

지문을 새기는 당신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시 <어머니>는 우리에게 익숙한 ‘모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독창적인 비유와 감각적인 시어로 새롭게 재해석한 수작입니다. 흔히 어머니를 노래한 시들이 감상주의나 눈물에 기대는 반면, 이 작품은 상실과 희생을 숫자의 논리와 식물의 생태에 빗대어 단단하고 격조 높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시를 깊이 있게 감상하기 위해 세 가지 핵심적인 비평적 포인트를 짚어보겠습니다.

 

1. '지문'과 '지장' : 삶의 흔적과 계약의 비극

 

시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핵심 이미지는 ‘지문(指紋)’입니다.

 

"신산하구나 세상사에 지장을 찍고 / 이윤없는 은총을 저당했거니“

 

시인은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가락 지문을 세상이라는 가혹한 계약서에 찍은 ‘지장’으로 치환합니다. 보통의 계약은 이윤을 남기기 위함이지만, 어머니의 계약은 ‘이윤 없는 은총’을 자식에게 주기 위해 자신의 삶을 담보(저당) 잡히는 비극적 거래입니다. '신산(辛酸)하다(맛이 시고 맵다, 즉 삶이 고달프다)'라는 표현이 이 계약의 무게를 잘 보여줍니다.

 

2. '하나에서 열을 빼던' : 모성의 역설적 수학

 

이 시에서 가장 강렬한 시적 허용과 전복이 일어나는 문장입니다.

 

"하나에서 열을 빼던 못 박힌 손등“

 

수학적으로는 $1 - 10 = -9$로, 절대적인 마이너스(결핍)의 상태를 뜻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가진 단 ‘하나’의 전부를 쪼개어 ‘열’ 형제(혹은 자식들의 수많은 요구)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뺄 것이 없는데도 끝없이 빼어주어야 했던, 계산이 통하지 않는 모성의 절대적 희생과 고독을 이 한 줄의 역설로 완벽하게 요약해 냅니다.

 

3. 식물성 이미지 : '풍란'과 '인동초'의 거룩함

 

2연에서 시인은 어머니를 움직이는 인간이 아닌, 한 자리에 뿌리박고 고통을 견뎌내는 식물로 형상화합니다.

⚫풍란(風蘭) : 흙도 없는 바위나 나무에 붙어 오직 바람과 이슬만 먹고 자라는 식물입니다. '풍상(風霜)먹은'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온갖 모진 세월을 몸으로 받아낸 어머니의 초상을 보여줍니다.

⚫인동초(忍冬草) : 말 그대로 '겨울을 참아내는 풀'입니다. 시인은 이를 "남루해서 거룩한"이라는 모순형용(Oxymoron)으로 표현합니다. 자식을 키우느라 당신의 행색은 닳고 닳아 남루해졌지만, 그 본질은 숭고하고 거룩하다는 찬사입니다.

 

4. 연어의 황혼길과 영원한 각서

 

마지막 연에서 어머니는 '주마등'과 '정한수'를 켜고 자식의 안녕을 빕니다. 그리고 시선은 '연어의 황혼길'로 향합니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모든 에너지를 쏟아 알을 낳고 죽어가는 대표적인 모성/부성의 상징입니다. 어머니의 황혼길 역시 연어의 그것과 닮아 있습니다.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자식이라는 '각서'에 당신의 '지문'을 새기며 흔적을 남기려는 모습은, 어머니의 희생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서약임을 보여주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 총 평

 

한기홍 시인의 <어머니>는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값싼 눈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윤 없는 저당’, ‘하나에서 열을 빼는 계산’, ‘연어의 황혼길’ 같은 날카롭고 서늘한 비유를 통해, 그 사랑이 얼마나 처절하고 위대한지를 독자의 가슴에 묵직하게 각인시키는 밀도 높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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