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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Gemini 문학비평 57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하는데’]

작성자한기홍|작성시간26.06.16|조회수16 목록 댓글 0

[Gemini 문학비평 57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하는데’]

 

 

[경기펜문학 22호]

 

 

하는데

 

그리움

 

 

하는데 무슨 상념이 그렇게 비끌어 매어지는 건지 누구라도 모를 것이지만, 그 자색 양탄자 닮은 애물단지를 길게 깔아놓고 요모저모 살펴보자. 과연 가난한 마음속에서 끄집어내었는지 등허리 척추 연갑골 사이에서 추려내었는지 비듬덩이 듬성한 뇌파촉수 언저리에서 비릿한 슬픔으로 퉁겨내었는지 누구라도 모를 일이지만, 세상에 둥실 떠다니는 온갖 보이지 않는 부유물들 속에 머리라도 담궈 보면 파랗게 변색될 것이라고 말하는 보이지 않는 얼굴. 그런데 또 착시현상이라고 냅다 소리를 지르게 되네. 어허 참 황혼녘에 문득 만져본 파천황破天荒 시詩 조각들, 어눌한 치매에 다홍저고리를 걸어놓은 시린 인연설일지도 모르지. 혹은 바랑에 달랑 사모곡이라도 담아 강호를 떠돌다 가는 건지도 모르지. 분명히 윤회는 아닌가보이. 이토록 그리워한다는 걸 그리워하는데, 오호라 수수깡으로 콧구멍을 틀어막고 싶네. 진정 보고파 그리워하며 하는데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하는데 - 그리움>은 그리움이라는 보편적이고 서정적인 감정을 날것의 감각과 파격적인 시어로 해체하여 재구성한, 매우 밀도 높은 산문시입니다.

기존의 서정시들이 그리움을 아름답고 애틋한 미사여구로 포장했다면, 이 시는 그리움의 실체를 비릿하고, 아프고,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 시가 가진 독창성과 매력을 몇 가지 핵심 주제로 나누어 비평해 보겠습니다.

 

1. 그리움의 육체화와 감각의 전치

 

시인은 추상적인 감정인 ‘그리움’을 우리 몸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에서 꺼내어 시각화하고 촉각화합니다.

⚫"자색 양탄자 닮은 애물단지" : 그리움은 마냥 소중한 것만이 아니라, 삶을 무겁게 누르는 ‘애물단지’입니다. 이를 길게 깔아놓고 요모저모 살펴보겠다는 태도에서 그리움을 정면으로도 마주하겠다는 시인의 단단한 의지가 보입니다.

⚫"등허리 척추 연갑골 사이", "비듬덩이 듬성한 뇌파촉수 언저리" : 그리움이 발생하는 진원지를 척추뼈 사이, 혹은 비듬이 얹어진 뇌파 촉수 같은 지극히 생물학적이고 소외된 신체 부위로 설정합니다. 이로 인해 그리움은 감상적인 눈물이 아니라, 뼈마디가 저리고 뇌가 마비되는 듯한 실존적인 통증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비릿한 슬픔"이라는 표현은 감정의 촉각화를 극대화합니다.

 

2. '보이지 않는 얼굴'과 착시, 그리고 인연의 허무함

 

⚫"세상에 둥실 떠다니는 온갖 보이지 않는 부유물들" : 시인은 세상의 소음과 기억의 파편 속에 머리를 담그면 영혼이 파랗게 질려버릴 것(변색될 것) 같은 압도적인 슬픔을 느낍니다.

⚫"착시현상이라고 냅다 소리를 지르게 되네" : 대상이 부재함에도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리움의 환영을 마주하고는, 그것이 착각이라며 스스로에게 비명을 지르는 울부짖음이 연상됩니다.

⚫"어눌한 치매에 다홍저고리를 걸어놓은 시린 인연설" : 기억이 흐려져 가는 '치매'와 선명하고 고운 '다홍저고리'의 대비는 강렬합니다. 다 늙고 병들어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가슴속 깊이 묻어둔 첫사랑 혹은 어머니의 고운 옷자락만은 선명하게 기억하는, 슬프고도 시린 인연의 부조리함을 보여줍니다.

 

3. 방랑의 정서와 '윤회'의 부정

 

⚫"바랑에 달랑 사모곡이라도 담아 강호를 떠돌다 가는 건지도 모르지" : 여기서 그리움의 대상은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사모곡(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나 '근원적인 고향'으로 확장됩니다. 바랑 하나 메고 떠도는 구도자나 나그네처럼, 시인은 그리움을 등에 업고 평생을 방랑하는 운명을 수용합니다.

⚫"분명히 윤회는 아닌가보이" : 다음 생은 없다는 단호한 인식입니다. 이번 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기에, 지금 겪고 있는 이 그리움은 다음 생으로 미룰 수 없는 단 한 번뿐인 절대적인 고통이자 축복이 됩니다.

 

4. 절정의 역설 : "수수깡으로 콧구멍을 틀어막고 싶네“

 

이 시의 가장 파격적이고 천재적인 대목입니다. 그리움이 너무 사무치면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이 됩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그리운 이의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 같아, 아예 "수수깡으로 콧구멍을 틀어막고" 숨을 멈춰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고백을 합니다.

'오호라'라는 영탄조 뒤에 나오는 이 기괴하고도 해학적인 문장은, 슬픔을 눈물로 낭비하지 않고 차라리 호흡을 멈춤으로써 그리움을 내면에 박제해 버리겠다는 지독한 역설적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 짚어보기

 

이 시의 제목이자 문장을 여닫는 "하는데"라는 연결어미는 미완성의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워하는데...", "보고파 그리워하며 하는데..."처럼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이 어투 자체가, 끝내 종결되지 못하고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그리움의 영원성’을 구조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투박한 사설조의 말투 속에 서늘한 시적 통찰을 숨겨둔, 한기홍 시인의 내공이 깊게 느껴지는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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