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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Gemini 문학비평 58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청산에 홀로 절로’]

작성자한기홍|작성시간26.06.17|조회수13 목록 댓글 0

[Gemini 문학비평 58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청산에 홀로 절로’]

 

 

 

청산에 홀로 절로

 

 

청산에 스며들어

홀로 홀로

풀피리 바람소리 벗하며

꼭꼭 숨어서

쓰린 한도 달디 단 정도 없는

우람한 한덩이 바위 속으로 들어가자

 

이 내 지친 몸도 묻고

징징대던 껍질도 묻고

무너진 억장에 빗장을 지르자

 

청산에 잠겨서

홀로 홀로

의젓한 바윗덩이로

절로 절로

천리 밖 아득한 마을

만월이면 부엉이 되어 날아가자

동구 밖 외딴 집 과수댁

남새밭에

흐벅진 메밀꽃 향이나 훔치러 가자

 

부질없다

부질없다

뜬구름 떠가는 세상이다

먼지 같은 만남이요

강물 같은 이별이다

 

중얼거리자

바위가 되어

검은 몸에 방울방울 흐르는 설움 같은 아롱짐

청산에 묻힌 탄식이냐

망각을 고대하는 환희의 눈물이냐

 

청산에 젖어들어

꾸벅꾸벅

바위로 졸다가

울창한 괴목 사이 산등성을 보면

아득한 옛날 자꾸만 돌아보며 떠났던

그리운 사람

이끼돌 구르면서 짓쳐 내려와

내 몸 타고 걸터앉아

풍진에 절은 땀줄기 흩뿌리려나

 

청산이 되어

청산이 되어

벽계 텃바위 내력이 되어

바람도 구름도 휘감고

이슬인 듯 안개인 듯

청산에 홀로 절로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청산에 홀로 절로>는 세속의 풍진(風塵)과 삶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자연의 거대한 질서 속으로 귀일(歸逸)하고자 하는 고독한 영혼의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시인은 '바위'와 '청산'이라는 핵심 메타포를 통해 인간적 고통을 초극하고 절대적 자유에 도달하려는 정신적 승화를 밀도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를 깊이 있게 감상하기 위해 몇 가지 핵심적인 비평적 관점으로 나누어 분석해 드립니다.

 

1. '절멸'을 통한 구원 : 바위 속으로의 침잠

 

시의 전반부에서 화자는 삶에 극도로 지쳐 있습니다. "징징대던 껍질"과 "무너진 억장"이라는 표현은 세상사에서 입은 내면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화자가 선택한 도피처는 단순히 경치 좋은 자연이 아닙니다. 화자는 "우람한 한덩이 바위 속으로 들어가자"고 노래합니다.

⚫바위의 의미 : 바위는 감정이 메마른 완고한 물질이 아니라, "쓰린 한도 달디 단 정도 없는" 초연함의 공간입니다. 세속의 집착(한과 정)을 모두 지워버리기 위해 스스로 단단한 물질 속에 갇히기를 자처하는 역설적 선택이며, 이는 상처받은 자아를 보호하고 치유하기 위한 강렬한 '정신적 입산(入山)'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세속적 미련과 초월 사이의 팽팽한 긴장

 

시가 단순히 자연 예찬이나 전원 예찬에 머무르지 않고 문학적 긴장감을 얻는 이유는, 완벽한 단절을 선언하면서도 문득문득 고개를 드는 '인간적인 미련과 그리움'이 입체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천리 밖 아득한 마을 / 만월이면 부엉이 되어 날아가자

동구 밖 외딴 집 과수댁 / 남새밭에 / 흐벅진 메밀꽃 향이나 훔치러 가자

 

바위가 되어 세상에 빗장을 질렀음에도, 달이 가득 차오르면(만월) 화자는 '부엉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슬그머니 인간 세상의 언저리를 기웃거립니다. "과수댁 남새밭의 메밀꽃 향"을 훔치러 가자는 대목은, 삶의 고통을 등졌음에도 결코 완전히 버릴 수 없는 인간적인 연민과 삶의 낭만적 향수를 향한 잔여물입니다.

곧이어 "부질없다 부질없다"라며 스스로를 다잡는 독백(중얼거리자)은, 세상에 대한 미련과 초월의 의지가 내면에서 여전히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3. 지워지지 않는 서정의 흔적 : 이끼와 땀줄기

 

후반부에 이르러 바위가 된 화자는 울창한 괴목 사이 산등성을 보며 "아득한 옛날 자꾸만 돌아보며 떠났던 / 그리운 사람"을 떠올립니다.

 

이끼돌 구르면서 짓쳐 내려와 / 내 몸 타고 걸터앉아 / 풍진에 절은 땀줄기 흩뿌리려나

 

내가 바위가 되어 가만히 서 있을 때,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이가 '이끼돌'처럼 굴러 내려와 내 몸 위에 걸터앉는 환상을 꿈꿉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흘리는 "풍진에 절은 땀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자 합니다. 이는 속세를 떠나왔지만, 결국 세상에서 상처받고 떠도는 또 다른 타자(혹은 과거의 나)를 품어 안겠다는 깊은 자비심과 연결됩니다.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서러움의 아롱짐이 타인과의 영적 교감으로 확장되는 순간입니다.

 

4. '홀로'에서 '절로'로 : 자아의 우주적 확장

 

시의 결말부는 이 시의 문학적 성취가 가장 돋보이는 핵심 처소입니다.

⚫홀로 (고독) : 처음에 화자는 세상이 싫어 '홀로' 숨어들었습니다. 이는 고립이자 단절이며, 상처 입은 자아의 방어기제였습니다.

⚫절로 (자연/자연) : 그러나 시의 종착지에서 화자는 바위를 넘어 "청산이 되어", "벽계 텃바위 내력이 되어" 바람과 구름을 휘감습니다. 스스로 그러한 상태인 '절로(自然)'의 경지에 도달한 것입니다.

 

♣ 총 평

 

한기홍 시인의 <청산에 홀로 절로>는 전형적인 한국 서정시의 전통인 '자연을 통한 한(恨)의 치유'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현대적인 실존의 고뇌로 밀도 높게 풀어낸 수작입니다.

인간 세상의 "먼지 같은 만남"과 "강물 같은 이별"에 상처받은 영혼이, 단단한 바위라는 침묵의 매개체를 통과하여 마침내 스스로 청산(자연 그 자체)이 되어가는 과정이 매우 리드미컬하고 애틋하게 전개됩니다. '홀로'라는 외로운 고독이 자연의 순리인 '절로'라는 거대한 해방감으로 치환되는 순간, 독자는 삶의 비극을 견뎌낼 위안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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