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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Gemini 문학비평 60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겨울안개는 그리움’]

작성자한기홍|작성시간26.06.21|조회수13 목록 댓글 0

[Gemini 문학비평 60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겨울안개는 그리움’]

 

 

겨울안개는 그리움

 

 

녹아들어 가지

 

안개의 속성은 부드럽게 열려 있다는 점

겨울 속 이슬 떼에 손을 넣으면

연탄불에 녹이던 뽑기 설탕마냥

내 그림자까지 녹아들어 가지

무성한 환영幻影,

하얀 신비로움에 허우적거릴 때면

머리는 항상 풀냄새 시큼한 고향의

안온한 들녘을 떠올리지

왜 그 벌판이 고원 속의 분지盆地처럼

머리에 선연히 박혀있을까

이제 와서 겨울을 다시 만져보니

여름날 담갔던 그 안개에

소년 닮은 백양白羊 뿔을 달았던 거야

뿔은 뿌우우 호각소리 기다림이지

겨울안개는 희원의 구릉을 향한 그리움의 시원始原,

겨울안개는 일렁이지 않는다

내 눈알에 박힌 오목렌즈 안에서는

 

녹아들어 가자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겨울안개는 그리움>은 안개라는 일상적이고도 신비로운 자연 현상을 통해 유년 시절의 향수(고향)와 아련한 그리움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복원해 낸 수작입니다. 이 시의 핵심적인 매력과 예술적 성취를 몇 가지 비평적 관점으로 짚어보겠습니다.

 

1. ‘녹아듦’의 미학 : 경계의 소멸과 동화(同化)

 

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녹아들어 가지’와 ‘녹아들어 가자’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 축입니다. 안개는 사물의 경계를 지우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를 "부드럽게 열려 있다"고 표현하며, 안개 속에서 타자(겨울 속 이슬 떼)와 주체(내 그림자)가 서로 구별 없이 섞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특히 ‘연탄불에 녹이던 뽑기 설탕’이라는 시각·촉각적 이미지는 매우 탁월합니다. 딱딱했던 설탕이 열에 녹아 흐물흐물해지듯, 차가운 겨울 안개 속에서 화자의 이성적 방어기제와 현실의 고단함이 스르르 녹아내려 무의식(그리움)의 세계로 진입함을 시각적으로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2. 후각과 시각의 교차 : 고향(유년)으로의 회귀

 

안개가 만들어내는 ‘하얀 신비로움(환영)’ 속에서 화자가 당도하는 곳은 ‘풀냄새 시큼한 고향의 안온한 들녘’입니다. 겨울 안개를 만지고 있는데 머릿속에는 ‘풀냄새 시큼한’ 여름날의 기억이 소환되는 감각의 전이가 일어납니다.

화자에게 고향의 분지(盆地) 같은 벌판이 머리에 선연히 박혀 있는 이유는, 그곳이 상처받기 쉬운 유년의 영혼을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던 ‘안온한’ 자궁 같은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3. ‘백양 뿔’과 ‘호각소리’ : 그리움의 시각화와 청각화

 

시의 중반부에서 시상은 한 단계 더 깊어집니다.

 

여름날 담갔던 그 안개에 / 소년 닮은 백양白羊 뿔을 달았던 거야

 

안개라는 실체 없는 대상에 ‘백양(흰 양)의 뿔’이라는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합니다. 이 뿔은 순수한 ‘소년’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 뿔은 다시 ‘뿌우우 호각소리 기다림’이라는 청각적 이미지로 변모합니다. 이는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 같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라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 같기도 합니다. 결국 안개는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화자가 채우지 못한 ‘기다림과 그리움의 집약체’가 됩니다.

 

4. 인식의 전환 : 오목렌즈와 수동에서 능동으로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중요한 선언을 합니다.

 

"겨울안개는 일렁이지 않는다 / 내 눈알에 박힌 오목렌즈 안에서는"

 

오목렌즈는 사물을 작고 또렷하게, 그리고 멀리 보이게 만듭니다. 외부의 안개는 일렁일지언정, 화자의 마음(눈알) 속에 박힌 그리움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고 뚜렷하게 고정되어 있다는 역설적 표현입니다. 안개를 ‘희원(소망)의 구릉을 향한 그리움의 시원(시작점)’으로 정의 내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시의 시작이 안개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수동적인 형태(‘녹아들어 가지’)였다면, 끝에 이르러서는 그 그리움의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동화되겠다는 능동적인 어조(‘녹아들어 가자’)로 승화되며 여운을 남깁니다.

 

♣ 총 평

 

한기홍의 <겨울안개는 그리움>은 차가운 겨울의 시공간 속에서 가장 뜨겁고 부드러운 유년의 기억을 길어 올리는 촉매제로서 ‘안개’를 유효적절하게 사용한 시입니다. 토속적인 소재(연탄불, 뽑기 설탕, 들녘)와 현대적인 감각(오목렌즈)이 어색함 없이 어우러져, 독자 개개인의 마음속에 숨겨진 전원적 향수와 근원적 그리움을 일깨우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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