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숙제는
‘어떤
기구를 만들 것인가’를
넘어 ‘그
기구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제도를 바꾸면
그 뜻대로 세상이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는 우리 정치가 반복해온 가장 흔한 착각 중 하나다.
일례로 검찰 개혁의 상징으로 출범한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공수처)가
지난 7년간
보여준 궤적은 그 환상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검찰청 해체 이후
‘공소청-중수청’
체제로의 재편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검찰개혁은 구조가 바뀐 만큼 달라질까.
공수처의
탄생은 시대적 요구였다.
그러나 초대 김진욱 체제의
‘결단
없는 리더십’과
뒤이은 오동운 체제의
‘주저하듯
무능함’은
공수처를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의심과 무능이라는 냉소만을 남긴 채 시민의 관심과 기대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권력을 겨누는 수사는 속도가 아니라 정교함이 생명인데,
공수처는 그 기본을 증명하지 못한 체,결국
‘또
하나의 권력기관’이라는
오명만을 남긴 채 형해화 되고 말았다.
현재 국회
입법을 통과한 검찰청 해체에 따른 공소청·중수청
분리 역시도 표면적으로는 권한 분산과 상호 견제를 위한 진전처럼 보이지만,
공수처의 지지부진함이 보여주듯,
권력의 기계적 분리가 곧 시민이 원하는 민주적 견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사는 중수청이,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 구조는 자칫
‘책임의
분산’을
넘어 ‘책임의
소멸’로
이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건이 실패했을 때 누구도 최종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공수처'에서
보았던 실패의 패턴이지 않는가.
이 거대한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선 기관의 문패 갈이 이상의 개혁에 힘을 실어줄 동력이 필요하다.
바로 의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시민사회의 정교하고도 집요한
감시다.
제도는 설계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다시 또 생물처럼 움직이며,
법망의 틈새를 찾아 회귀하려는 못된 본능을 갖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먼저,
법안의 수정과 보완을 통해 제도의 빈틈을 메우는 정교한
설계가 계속되어야 하고,
시민사회는 직접 개입은 못하더라도 수사와 기소 사이의
‘칸막이
현상’을
감시하는 정보의 가교가 되어야 한다.
두 기관 사이의 정보 단절이나 책임 떠넘기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불기소 결정서 분석과 공판 모니터링을 통해 수사 절차의
투명성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결국 개혁은 기관의 이름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권력을 다루는 방식,
보완과 개선,
그리고 이를 감시하는 시민의 눈이 함께할 때 비로소 제도로서
생명력을 얻는다.
즉,
개혁은 일회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점검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예상치 못한 부작용까지 감당하는
‘지속적
개입’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공수처의
지지부진함은 하나의 기관에 대한 평가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구조
개편’이라는
외형적 해법에만 기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다.
이제 남은
숙제는
‘어떤
기구를 만들 것인가’를
넘어 ‘그
기구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깨어있는 감시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공소청과 중수청 역시 기존 권력의 또 다른 얼굴로 사장될
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