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祭義에 曰 霜露가 旣降이어든 君子가 履之하고 必有悽愴之心하나니 非其寒之謂也라 春에 雨露旣유어든 君子가 履行하고 必有㤹惕之心하여 如將見之니라.
제의(祭義)에 가로대 서리와 이슬이 내렸을 때 군자는 밟으면서 반드시 슬픈 마음이 들지만 그 추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봄에 비와 이슬이 땅을 적시면 군자는 이것을 밟고 걸을 때 반드시 놀라고 두려운 마음이 있음은 장차 그것을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集解) 祭義 禮記篇名 履 踐野 悽愴 悲傷貌 濡 沾濡也 㤹惕 驚動貌 保氏曰君子於親 終身不忘 故 氣序遷改 目有所見 則心有所感焉 秋陰之時 萬物衰憊 履霜露則其心 悽愴 而悲哀焉 春陽之時 萬物發生 履雨露則其心 㤹惕 如將見之也 方氏曰經文 於雨露 言春 則知霜露 爲秋矣 於霜露 言非其寒 則知雨露 爲非其溫矣 於雨露 言如將見之 則知霜露 爲如將失之矣 讀者 不可不知
제의는 예기 편명이다. 履는 바깥을 밟는 것. 悽愴은 슬프고 상처 난 모습. 濡는 첨유하다. 구척은 경동하는 모습.
보씨 말하기를 군자는 어버이를 종신토록 잊지 않는 때문에 氣를 차례로 바꾸어 나간다. 눈으로는 보는 바가 있는 즉, 마음에는 느끼는 바가 있다. 秋陰의 시기에는 만물이 쇠약하고 시들어서 서리와 이슬을 밟을 때 그 마음이 처창하여 비애를 느끼는 것이다. 春陽의 시기에는 만물이 발생하므로 雨露를 밟을 때의 그 마음은 놀라고 두려운 듯 장차 그것을 본 것과 같이 한다.
방씨 말하기를 經文에 雨露(우로)에서 봄이라고 말하면 곧 霜露(상로)를 알면 가을을 생각할 것이다. 霜露(상로)에서 그 추위가 아님을 말하면 곧 雨露(우로)를 아는 것이 그 따스함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雨露(우로)에서 장차 보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하면 곧 霜露(상로)를 아는 것은 장차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여길 것이다. 독자가 알지 못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