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나무 아래서 함박꽃 피우기
원무현
세파에 시달리다 속에 불이 날 땐
푸조나무 아래로 가지
가서 나무가 꺼내놓은 그늘을 걸치지
걸치고 있노라면 열이 숭숭 빠져나가는 옷 한 벌
그때 내가 옷값으로 지불하는 것은
그저 노거수를 안아 주는 것
껴안으면 지난 겨울 삭풍에 살이 에이고
북풍에 가지가 찢겼던 몸이 귀를 당기지
그 몸에 귀를 맡기면 들리는 나무의 말
끓는 속 타는 몸 식혀주는 이 그늘
무엇으로 씨줄 날줄을 삼아서 짠 것인지
오백년 세월이 면면한 직조 비법이 귓속에 고이지
폭포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게하는
나무의 비법은 주저 없이 불난 속으로 쏟아지지
쏟아져 오장육부 구석구석 흘러 들지
마침내는 서늘해진 몸에서 함박함박
웃음꽃 피어나지
[2008년 시선 봄호 좋은시로 선정]
오백년 노거수가 드리운 그늘을 시인은 노고수를 한번 안아주고 얻어 걸친 옷 한
벌에 비유하고 있다. 그 그늘은 한여름 땡볕으로 퍼붓는 세상의 오욕을 가려주기도
하고, 왕방울로 흘러내리는 노동의 땀방울을 식혀주기도 하고, 피곤한 영혼을 어루
만지는 새소리로 다가오기하한다. 그 모든 푸조나무의 평화는 바깥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 한 자락에 깃들어 있다 (최영철시인의 해설평 중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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