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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재미있는 시평= 섬/정현종

작성자갈바람|작성시간06.07.29|조회수55 목록 댓글 0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섬> >





두 줄의 시가 전부다. 미치고 팔짝, 뛸 만큼 당돌하다. 무슨 시가 이러냐고 탓하기에는 심장이 먼저 뛴다. 노루처럼 펄쩍펄쩍 뛰는 게 아니라 감동으로 성큼 다가선다. 차근차근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방적이어서 감동의 울림이 크다.

이 시의 핵심은 ‘섬’이다.

왜 하필이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냐. 그것도 뜬금없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아주 서술적으로 그리고는 평이하게 산문화해서 늘어놓았다. 행 갈이를 한 것도 아니다. 다음 행도 마찬가지다. <그 섬에 가고 싶다>가 전부다. 어떤 이미지를 불러오거나 꾸밈이 없다. 시를 모르는 사람이 써 놓은 낙서와 별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은 이 시에 열광하는가. 이유가 있다. 그것을 찾는 일이 오늘 내가 할 일인 듯하다. 섬이 주는 감동은 사람의 고독과 맞닿아 있다. 사람은 저마다가 섬이기 때문에 섬이란 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꺼번에 공감의 확장을 불러온다. 이 일시에 일어나는 품새가 전면적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시들은 길고 화려하게 꾸몄음에도 독자의 가슴을 파고들지 못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 시의 미덕이 절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아름다움은 단순미라고 나는 우긴다. 우기는 재미없으면 세상사는 맛도 안 나기에 나는 우긴다. 우긴다고 화내지는 말아주시기를 바란다. 짧은 시가 사실은 더 어렵다. 이보다 짧은 시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장 꼭드의 <뱀>이란 시는 더 짧다. 전문이 <길다>가 전부이다. 그러나 이 시는 정현종 시인의 <섬>이란 시에 비하면 한 단계 아래다. 감동이나 어떤 울림을 주지 못한다. 울림이 없는 시는 시가 아니다. 서술일 뿐이다.

문화 예술이란 것이 감동을 주지 않으면 예술로서의 생명이 끝난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 아침 조회시간에 연단에서 길게 이야기할 때 귀 기울여 들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아니면 회사에서 사장이 시무식에서 분발하자고 말할 때 감동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 들어보라. 없다.

왜?

늘 듣던 이야기를 다시 하고 있으니 그렇다. 그럼 이 시는 어디에서 감동이 온단 말인가. 앞서 이야기했지만 너무나 산문적이고 평범한 두 줄의 나열에서 말이다.

너도 사람이다. 지구상에서 아주 흔한 동물이 사람이다. 헌데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이 사람을 아주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우리를 울리고 웃기는 말이 무엇인가를, 하나로 귀결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사람’이다. 나도 사람이고 내가 사랑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대상도 사람이다. 사람에게서 기쁨과 슬픔의 원천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사람에게서 영혼을 빼앗아 버린다면 사람의 육체는 균형을 잡고 서 있을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서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사람이 걷는 모습도 살펴보라. 한 발이 앞으로 나가면 한 발이 남아서 지탱해주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람의 걷는 모습은 어긋남의 반복적인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삶이란 것은 사람의 걷는 모습과 같아서 어긋남의 반복이다. 걸을 때 손도 마찬가지다. 오른손이 앞으로 나가면 왼손은 뒤로 간다. 역시 어긋남의 반복이다.


삶이란 결국 어긋나고 넘어지는 것을 일으켜 세우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삶은 태초에 힘이 들것이란 것을 예언하고 있었다. 이 불우한 존재인 <사람들 사이>라는 말에서 연민이 솟지 않는가, 아니라면 할 말이 없다. 그 사람은 여기까지만 읽고 책을 집어던지면 된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사람을 ‘더러운 놈’이라고 욕하면 속이 후련할 것이다.




사람을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난다

사람으로 살아보니 그랬다



<아침>이란 글입니다. 그 연민이 솟아오르는 사이에 돌연변이처럼 <섬>이란 존재가 끼어든다. 나는 ‘섬’을 생각하면 먼저 아득하고, 막막하고, 그러면서도 고립된 나 자신을 먼저 떠올린다. 그곳에는 세상과 상관없는 풀들이 자라고, 세상과 이별한 나무들이 자라고, 사람을 멀리하는 새들이 둥지를 트는 곳으로 떠오른다. 별리의 세계가 아주 고립적으로 남아 바다에 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한 줄의 시가 완성되었다. 지금은 반백이 되어버린 시인, 정현종 시인. 나는 그가 현대불교문학상 수상식 때 사회를 본 인연이 있다. 허나 그는 나를 알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도 다른 행사 때에 만나 목례를 하는 정도로 스쳐갔을 뿐이다. 그것이 나와 정현종 시인의 인연의 전부다. 아담한 키에 정갈한 신사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다시 한마디 한다. 이 말은 너무나 평이하지만 앞에서 주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 그리고 안타까움이 안개처럼 피어오른 곳에다 <나는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말로 불을 질러 버린다. !

사람들 사이에 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이지 않은 데다, 그곳이라는 익명성의 장소에 가고 싶다는 것이 만나 상승작용을 한다. 그래서 이 시는 불립(不立)의 존재인 사람을 흔든다. 명시는 사람을 흔들어야 명시다. 다시 한 번 나는 읽어본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ㅣ작가소개ㅣ


신광철
문학세계등단

월간한비문학 편집고문

월간한비문학 작가협회 고문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국제 교류위원.

한국문인협회회원
불교 문예 삼오문학상(1994)/세계 계관시인 문학상(2002) 수상/
시집: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사람, 그래도 아름다운 이름/삶아 난 너를 사랑한다

소설:늑대의 사랑/칭기스킨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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