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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문인이야기/김광균

작성자갈바람|작성시간06.07.29|조회수101 목록 댓글 0

시를 쓰는 문인들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가면서 어떤 동기를 부여 받는것일까
그 외롭고 어려운 길로 들어서게 되는 특별한 어떤 이유가 정말 있는 것일까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 이기에 감성과 정서를 글로 표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길을 평생 걷고 있는 사람인 문인들은
그들만의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의 유년기에
부모님과 살지 못하고 조부모님 아래서 성장했는데 그때 김소월시집을 보게 되었다
글씨도 모르는 나는 그때 책이란 낯선 것에 대한 집착이 강했는지
책을 펼쳐도 무슨뜻인지 모르면서 글자가 아니라 그림 정도로 생각하면서도
늘 손에 들고 다녔고 누가 달라고 해도 건네주지 않았다
후에 초교에 들어가면서 글자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읽었지만 도통 알아먹지 못할
말들만 가득했다. 그 작은 시집이 너덜너덜 해지도록 아끼고 아꼈는데
후에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김소월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면서
문학소녀로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런 것들이 동기가 되어 시를 끄적이게 되었고
글쓰는 일을 잠시 멈추고 일상속으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았어도 지금 다시 글을
쓰는 일에 몰입하는것을 보면 마음만 있다해서 할수 없는 것이 문인의 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인 김광균의 시적 출발은 비애에서 비롯된다.
유년기의 정서를 표현한 초기 습작시기의 작품들을 볼 때 구체적인 체험(죽음)과
관련된 그의 비애를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 누나의 죽음 그리고 동무의 죽음들이
어린 그에겐 커다란 심리적 충격이었다. 이후 계撻풔?누이동생의 죽음과 친지들의
죽음에서 그의 비애는 더욱 구체화되고 깊이를 지니게 된다.

<해바라기의 감상(感傷)>

해바라기의 하-얀 꽃잎 속엔
퇴색(退色)한 작은 마을이 있고
마을 길가의 낡은 집에서 늙은 어머니는 물레를 돌리고
보랏빛 들길 위에 황혼(黃昏)이 굴러 내리면
시냇가에 늘어선 갈대밭은
머리를 헤뜨리고 느껴 울었다.
아버지의 무덤 위에 등불을 키려
나는 밤마다 눈멀은 누나의 손목을 이끌고
달빛이 파-란 산길을 넘고.


김광균은 여기에서 해바라기 꽃잎을 통해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다.
그가 해바라기 꽃잎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현재이고 그 꽃잎을 통해서
어머니를 떠올린 시간은 과거이다. 그가 떠올린 과거시간에는 퇴색한
작은 마을과 늙은 어머니의 고단한 노역이 존재한다. 어머니가 노역을
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버지의 죽음에 있을 것이며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버지는 현실이 아닌 곳에 존재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는 일을 하게 되고, 2연의 마지막 행 ‘
머리를 헤뜨리고 느껴 울었다’라는 표현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빗대어 아버지를 여윈 후 집안의 어려움, 자신이 가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과 같은 것으로 인한 김광균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상실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어딘가에 자신을 의지하고 싶지만 어린 그가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살아있는 사람들이 어둠이 오면 등불을 켜듯이 김광균이 그의 아버지
무덤에 등불을 켜는 것은 아버지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아버지가
가족의 구성원으로 돌아옴으로써 자신이 아버지에게 의지할 수 있고,
자신의 가족 또한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광균(光均)의 소망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의 작품 속에서
정신적 안식처인 과거로 회귀하여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산 자로서 함께
하고자 하는 심정과 의지를 담고있는데 이러한 삶과 죽음의 동일시 현상은
누이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을 다룬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호는 우두(雨杜). 시인 김광균은
(1914. 1. 19 경기 개성∼1993. 11. 23 서울.)
그가 태어난 곳은 개성역에서 동쪽으로 오리길을 가서 “동부나깟줄골”이라고 하는데,
이 곳은 “골목길을 나서면 큰길가에 쌀가게 포목가게가 길을 사이에 두고 있었고
대낮에도 시골서 나무를 싣고 온 우차(우차)가 지나갔다. 그 길가에 서있는
동부예배당에서 아침 저녁으로 울리는 종소리가 동리의 지붕 위를 스쳐갔다”고
회상하고 있다. 한편 그는 고향을 “고향은 나에게 쓰라린 곳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송도상고를 졸업했다. 중학시절인 1926년 <<중외일보>>에 <가신 누님>을 발표하였고,
이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옛 생각>, <병(病)> 등을 발표하였다.
1935년 <<조선중앙일보>>에 <황혼보>, <오후의 구도>, <외인촌>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36년에 서정주(徐廷柱), 오장환(吳章煥) 등과
더불어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여하였고, 1937년에는 <<자오선>>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김광균 시의 특징은 시에서 회화성을 강조한 이미지즘 풍의 시를 주로 썼다는 점이다. 김광균은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였고, 이미지의 공간적 조형을 시도하였으며 강한 색채감을 지닌 시어들을 사용함으로써 감각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였다. 특히, 그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중시하여 사물은 물론, 추상적인 관념이나 심리마저도 시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려 하였다.

한국현대시사에서 김광균은 1930년대 후반 모더니즘 시운동의 실천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로 김기림에 의해 이론화된 모더니즘을
김광균이 작품상에 구현함으로써 모더니즘 시운동의 한국 정착화에 공헌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김광균에 대한 연구는 주로 그의 작품세계와 이미지즘, 주지주의,
모더니즘의 관련성을 밝히는 데에 집중되어왔다. 근래에 들어서는 그의 작품세계에 관한
기호론적 측면의 연구나 주제론적 측면에서의 연구, 현상학적 측면에서의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광균의 전기적 생애 사실과 그의 문학세계와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는 간과되어 왔다. 대부분의 논문들에서는 김광균의 작품활동 시기를 시집 <와사등>을 발표한 1930년대 후반이나 시집 <기항지>를 발표한 1940년대 후반까지로만 파악하고해방 이후 그가 타계할 때까지를 그의 절필기 또는 침잠기로만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김광균은 - 비록 그가 해방이후 경제인으로서의 길을 걸으며 절필을 선언하고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 1980년대 이후 다시 본격적인 작품활동에 들어가 1990년까지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는 그의 연대별 발표 작품수를 살펴보면 알수있다.

-외인촌-
1935년 8월 6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김광균의 시작품. <외인촌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며, 외인촌의 정경을 회화적으로 그려내었다.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5연이 모두 독특한 장면을 지니며,
전체적으로 회화적 구도를 형성한다. 시인은 황혼, 산협촌, 산마루 길, 마차,
노을 등의 제재를 통해 외인촌의 모습을 구체화한다. 이들 제재는 시인이 임의로
선택한 것들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나열되어 있으며, 하나같이 이국정조(exoticism)를
느끼게 한다. 이 속에서 시적 화자가 느끼는 것은 낯섦과 외로움, 쓸쓸함이다.

시인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창을 닫는 집들에서 불안감을,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에서 공허감과 쓸쓸함을, 외인묘지의 어두운 수풀에서
정적과 공포를,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는 낡은 성교당의 시계에서 퇴락함과
적막함을,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서 해방감과 상쾌감을 느낀다.
이 작품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이국적인 고독과 애상의 정조에 젖어 있는 듯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아름답고 신선하고 명랑한 이미지를 지닌 시구들도 많다.
새빨간 노을에 젖은 구름, 물방울을 굴리는 작은 시내, 소녀들의 가벼운 웃음과 꽃다발,
푸른 종소리 등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것들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와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서로 조화되면서 이국적 정서를 자아내는
회화적 풍경을 이룬다. 특히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는 청각을
시각과 결합시켜 참신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설야-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김광균의 시작품.
1926년부터 주요 일간지에 시를 발표해 오던 시인이 다시 한 번 시단의
인정을 받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제 2의 데뷔작으로 그의 시 세계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시인은 밤에 눈이 오는 정경을 '그리운 소식'으로 은유화하고,
다시 '흩날리뇨'라고 시각화하여 이미지로 제시한다. 여기에 그리움이라는 관념을
첨가한다. 그리움의 대상은 먼 곳에 있으며 벌써 지나가버린 것이기 때문에
시적 화자는, 그 '없음'에서 오는 상실감, 고독감, 서글픔을 느낀다.
'서글픈 옛 자취인 양' 내리는 눈 속에서 '절로 가슴이 메어' 감상에 빠져 있는
화자는 그리움의 정서를 이기지 못하여 허전한 마음으로 뜰을 밟는다.

그때 그리움의 정체는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나타난다.
이는 눈 내리는 밤의 정경을 시각적 청각적인 상상을 통해 표현해 낸 것으로,
환상적으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김광균의 시에서는 우리 시어의 감각 공간을
확대시켜 주는 참신한 표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이미지의 제시와 함께
감정의 직설적인 서술도 서슴지 않는다. 예컨대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라는 시행에서는, 객관적 생활체험과 결부되지 않은 주관적 감정을 토로한다.
마지막 연에서도 눈이 '찬란한 의상'이라는 비유적 이미지로 제시되지만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라고 표현함으로써 결국은 심정적인 주관으로 귀착된다.

-추일서정-
1940년 7월 <<인문평론>>에 발표한 김광균의 시작품.
어떤 가을날의 풍경을 회화적 구도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상은 의도적으로
창조한 시인의 정신적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6행의 비연시(非聯詩)이지만
시상에 따라 4단락으로 전개된다. 첫째 단계에서는, 낙엽이 포도에
지천으로 떨어져 흩날리는 모습이 현대적 감성의 새로운 상상력으로 묘사된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의한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 치하에 억압받던 현실이 은연중에 오버랩되면서 황량한 공간적
배경이 가을의 쓸쓸함을 더해 준다. 둘째 단계에서는, 시적 화자의 시점이 파괴된
도시의 상상으로부터 눈앞의 구체적 현실로 돌아온다. 멀리 햇빛 속에 비치는
길이 넥타이처럼 풀어져 사라지고, 연기를 내뿜는 급행열차도 아득히 그 모습을 감춘다.
이를 통해서 시인은 한낮(2시)의 적막 속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마는 상실과 소멸의
정서를 그려낸다. 셋째 단계에서는, 잎이 떨어져 앙상하게 줄기를 드러낸 나무,
허옇게 흉한 모습을 보이는, 뜯겨나간 공장의 지붕, 망가져 구부러진 철책 등이
더욱 황폐하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이와 같은 가을 풍경 속에는 언제 바람에
날려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위태롭게 생긴 투명한 구름이 하나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모든 것이 상실 소멸되는 가운데 한 덩이 구름마저 없어져버릴까 봐
아쉬워하는 시적 화자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제까지 관찰자의 입장에 있던 화자가 직접 행동을 보여준다. 시적 화자는
시끄럽게 우는 풀벌레 소리 들리는 풀섶을 공연히 차 보는가 하면,
허전한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허공에 돌을 던져본다. 그러나 그 돌팔매도
쓸쓸한 풍경 속에서 허전함만을 덧보태며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문명 비판적인 지성과 현대적인 감성을 잘 조화시킨 세련된
이미지로 우리 내면에 새로운 심상공간(心象空間)을 조형해 내고 있다.
김광균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특히 회화적이고 비유적인
이미지의 구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와사등-
김광균(金光均)의 시집. 1946년 정음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시집은 1939년에 발간된 시집을 다시 인쇄한 것이다. <지등(紙燈)>, <가로수>,
<외인촌>, <와사등>, <풍경>, <정원> 등 도시적 정서와 감각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193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른바
‘회화화(繪畵化)’의 특징을 여러 작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표제시인
<와사등>은 1938년 6월 3일 ≪조선일보≫에 발표된 작품으로, 도시의 거리에
걸려 있는 가스등 아래서 밤을 맞는 현대인의 감정과 정서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시적 자아는 공허한 도시문명 속에서 의지하고
지향할 것 없이 소외와 고독을 느낀다. 이처럼, 이 시집은 전반적으로 도시문명에
대한 거부와 비판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일방적이면서도
주관적인 감정 분출이 작품 전체를 관류하면서 그 비판의 강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편, 도시 문명 속에서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시인은 주로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모더니즘 시론에 공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각적 이미지들이 추상적 관념과 연결되어 있고, 감상성이 과잉 표출된다는 점에서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은 구체적인 이미지와 감정의 절제를 주창한 모더니즘시와는 구별되기도 한다.

-기항지-
김광균의 제2시집. 1947년 정음사에서 간행되었다.
첫 시집 <<와사등>> 이후부터 8.15 광복 이전까지의 시 18편이 3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고, 뒤에 작자의 발문이 붙어 있다. 제1부에는 태평양전쟁의
와중에서 쓰여진 시 8편이, 제2부에는 18세에 죽은 누이동생에 대한
개인적 조가라 할 수 있는 <대낮>, <조화>, <수철리(水鐵理)> 3편이,
제3부에는 <추일서정(秋日抒情)>, <뎃상>, <도심지대>, <단장(短章)> 등
7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1부와 제2부에 수록된 시편들에서는 정감의 색채가
시적 변용을 거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이에 비해서 제3부에
수록된 시편들에서는 고독과 애수의 정서가 회화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한편,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 중 대다수가 죽음을 그 제재로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시편들이 쓰여지던 무렵이 시인에게는 대단히 절박한
상황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시인의 태도가
인생론적 깊이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시가 직설적 영탄의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광균의 대표 작품을 감상해 보자


<와사등>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회화적 이미지를 중시한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의 기수였던 김광균의 이 시는
문명의 도시에서 느끼는 고독과 낭만적인 감상을 시각화하여 보여 주었다.
이 시의 제목인 와사등(瓦斯燈)이란 gas등을 말한다. 현대 도시문명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밤 거리를 거닐면서 바라본 가스등의 차가운 불빛은
시인에게 슬픔을 느끼게 한다. `와사등'의 빛은 따뜻함을 주는 불빛이 아니라
`차단-한' 불빛이며, `비인 하늘'에 걸려 있는 쓸쓸한 불빛이다.

화자가 와사등을 차갑고 쓸쓸한 불빛으로 느끼고 도시를 묘지처럼
죽음과 두려움으로 느끼는 까닭은 무엇인가. 또 `까닭도 없이 눈물'겹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명백하게 보이지 않는 비애와 공허의 이유를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신호이냐고 독백하는 마지막 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갈 곳을 모르고, 자신에 대한 확신과 지향과 목표 없이 방황하기때문에 그는 까닭도
없이 슬프고 어두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등잔불과는 달리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가스등의 창백한 불빛 아래 갈 곳 없이 도시의 거리를 방황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김광균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하였다. 자신의 생활 근거지인 도시를
묘지로 생각하는 이의 비애는 김광균의 시에 방황하는 사람으로 자주 드러난다.
삶의 목표와 그 방향을 잃은 이가 흥성스러운 도시를 거닐다 문득 올려다 본 빈 하늘에
홀로 켜진 차가운 가스등 불빛이 그에게 새삼스런 비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절망과 비애를 통해 도시문명을 비판하며 개체의 고독을 회화적 수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김광균 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추일 서정(秋日抒情)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1연은 낙엽으로 허무적 애상감을 드러냈다. 낙엽이 망명 정부의 지폐처럼
무가치하게 흩날리는, 폭격 맞은 도룬 시를 상상하게 한다.
2연은 적막한 길을 묘사한 부분이다. 고정체인 길을 비고정체인
넥타이의 구겨짐으로 묘사하면서 낮 두 시의 한적한 시간을 설정하였다.
3연까지가 이 시의 전반부이다. 전반부는 가을의 황량함을 드러냈는데,
나목(裸木) 사이의 도시의 황량한 풍경이 제시되어 있다.
4연은 선경후정(先景後情)의 구조로 이 시에서 후정(後情)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가을이 주는 황량함 때문에 마음을 잡지 못하는
무기력한 자아가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허공을 돌팔매나 던지며
황량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5연에는 모든 것이 기우는 황혼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결국 상황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아로 설정되어 운명적으로
잠기어 가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시 역시 시각적 이미지와 참신한 비유가 돋보이는 시이다.
특히 이 시에서 사용된 시어와 비유는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시인의 관심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심은 현대 문명의 불모성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피상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현대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준 것으로 주목된다.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구겨진 넥타이' 등은
사물에 대한 관습적인 인식을 깨뜨린 독특한 비유들로 독자들의 지적인 태도와
상상력을 요구하는 표현들이다.

그러나 이 같은 비유의 참신성이 사물의 숨겨진 본질을 드러내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것이 이 시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 사용된 소재들은
그것의 신기함이나 새로움 때문에 선택된 것일 뿐, 당대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따라서, 이 시는 새롭고 신기한 이미지들이 결합되어 낯설고 이질적인
풍경화를 이루고 있을 뿐,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나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외인촌>

하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馬車)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電信柱) 우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의 벤치 우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외인 묘지(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란 별빛이 내리고,

공백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時計)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우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우에선

분수(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 소리.


1연은 산협촌으로 가는 마차와 산마룻길 전신주 뒤의 구름,
2 연은 작은 집들과 돌다리 아래의 시냇물,
3 연은 화원지의 공허한 풍경, 4 연은 어둠이 깃든 외인 묘지의 묘사이다.
'시들은 꽃다발'이나 '외인 묘지'의 이미지는 강한 상실감을 맛보게 한다.
5 연은 촌락의 시계와 성교당의 지붕이 보이는 장면으로,
이 두 개의 높게 솟은 형상은 상승 이미지로서 다음 연의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 연결된다. 6연은 내용면에서는 하등 연 구분의
이유가 없지만 따로 구분함으로써 그 신선한 공감각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각 연의 나열식 장면에 통일된 이미지를 부여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이 시는 황혼에서 밤으로 옮아가는 시간 배경을 가지고 있다.
첫째 연의 저녁 안개, 노을에 젖은 구름으로 형상화된 시간대를 지나,
둘째 연에서는 조그마한 집들이 창문을 닫음으로써 '밤'으로 향하는
시간의 이행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밤은 어두운 시대 상황을,
그 속에 들어선 조그만 집들은 유폐된 낯선 공간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안개라는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일종의 현대인의 방향 상실감과
공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 조차도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은 아니다.
'하이얀 / 고독한 / 시들은 / 가느란 / 여윈 / 퇴색한 / '등과 같은
김광균 시 특유의 막연한 수식어들은 이 시에도 가득하다.
이 형용사들은 이 외인촌 그림의 배경색을 창백한 블루 - 비애의 색깔로 느껴지게 한다.
그 비애를 낯선 곳에서,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비애라고 볼 수 있다.



<은수저>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가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1연은 화자가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는 모습이다.
저녁 식사 시간, 화자는 문득 아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잠깐 어디를 간 것이라고 믿어 왔지만, 저녁 밥상을 받고 아이의 빈 자리를 보며
그제서야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이의 방석에 놓인 주인 없는
'은수저'를 보며 화자는 눈물을 흘린다. '저무는 산'과 '잠기는 노을'은 하강·
소멸의 이미지로서 아이의 죽음을 상징하며, 아기를 '애기'로 표현한 것에서
더 짙은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은수저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빌며
그가 아이의 돌잔치 때 선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화자는
그 은수저에서 더 깊은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은수저'에서 '애기'를 떠올리고,
다시 그것은 '부정(父情)'으로 확대됨에 따라 마침내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2연은 한밤중에 화자가 아이의 환영(幻影)을 만나는 모습이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화자는 들창을 열고
바람 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던 중, 불어 오는 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방실방실 웃으며 방안을 들여다 보는 아이의 환영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화자가 반가와하기도 전에, 아이는 벌써 문을 닫고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3연은 아이가 죽음의 세계로 떠나가는 모습이다. 화자는
'먼 들길'로 제시된 죽음의 세계로 '맨발 벗은' 채 울면서 가고 있는
'애기'를 목메어 부르지만, 아이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그림자마저 아른거'릴 뿐이다.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던 2연의 '애기'가 3연에 와서는
사자(死者)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 있다. 아무리 목메어 부르며
그리워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이 곳 이승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아이임을 인정하고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데서 진한 육친애를 느낄 수 있다.

정지용의 <유리창>과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지만,
<유리창>보다 화자의 감정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별다른 수사적 기교 없이 평이한 서술로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지만, 그것을 절제하고 여과하는
시인의 인간적 성숙도를 짐작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 계속 열정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던 시인 김광균의
일생을 알아보고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시인의 감성은 평범한 것에서 올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회를 볼수 있는 예리한 감성과 늘 깨어있어 자신에게 수없이
깨달음을 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음 속에서 후에
많은 이들에게 오래도록 마음속에 간직하며
대대손손 들려주고 싶은 글을 남기는 것 같다
어느날 반짝 봄이 오는가 하다가 꽃샘추위로 잠시 멈춘 봄이
여기저기서 꽃망울 터트릴 준비에 바쁘다
그 어느 시간속이었을까, 시인 김광균이 서 있던 이 똑같은 봄날이 있었겠지
그 화사한 햇살 가득했던 봄날
시인 김광균은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쓰고 싶었을까
이 눈물나게 아름다운 봄날에 그는 어떤 가슴으로
그 길위에서 서성거렸을까.



시인 김광균의 약력
1926년 등사판 동인지 [유성] 발간
1929년 동아일보에 시 '병', 야경차 발표
1932년 경성고무 사원으로 입사
1936년 서울 용산 발령으로 거주지 이전
1936년 시인부락 동인
1937년 이육사, 신석초 등과 '자오선' 동인으로 참가
1938년 25세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설야` 당선
1939년 시집 '와사등' 출간
1947년 시집 '기항지' 출간
1950년 동생의 납북으로 대신 사업체를 인수하여 경영
1969년 문단 고별시집

ㅣ작가 소개ㅣ

 

김선숙

월간 한비문학 수필 부문 등단

한국한비문학 작가협 사무국장

월간 한비문학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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