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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문인이야기/백석

작성자갈바람|작성시간06.08.07|조회수66 목록 댓글 0

<테마로 끝내기>란 책을 딸애가 가지고 나오면서

" 엄마, 난 백석이란 시인이 좋아, 시중에서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좋았는데 엄마도 한번 읽어볼래요?" 한다. 아이가 건네준 책 속에는 쟁쟁한 문인들의 작품세계와 여러 편의 시에 대해서 자세한 평을 해놓고 이해하기 쉽도록 시를 해석해 놓고 있었다. 딸애가 좋았더라고 말한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어보았다. 그 속에 그 많은 시(詩)들 중에서 왜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좋았을까 같이 공감대를 갖기 위해서 반복해서 읽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눈은 푹푹 나리고..눈은 푹푹 쌓이고..를 입안으로 중얼거리며 글 속으로 자꾸 마음이 가는 것을 보았다. 그 후로도 눈발처럼 꽃잎이 흩날릴 때도 눈은 푹푹 날리고..그리고 그 꽃잎이 주단처럼 땅 위에 쌓여갈 때도 눈이 푹푹 쌓이고..라면서 백석의 시가 자꾸 떠올랐던 것이다. 백석의 시는 중독성이 있는 듯했다. 한번 읽고 잊어버리지 못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백석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자 한다.

 

백석의 본명은 기행(夔行).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 〈여성〉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만주 신징[新京]에 잠시 머물다가 만주 안둥[安東]으로 옮겨 세관업무를 보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면서 글을 썼으며, 6·25전쟁 뒤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시 〈여승 女僧〉에서 보이듯 외로움과 서러움의 정조를 바탕으로 했다. 〈여우 난 곬족〉(조광, 1935. 12)·〈고야 古夜〉(조광, 1936. 1)에서처럼 고향의 지명이나 이웃의 이름, 그리고 무술(巫術)의 소재가 자주 등장하며 정주 사투리를 그대로 썼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모국어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슴〉 이후에는 시집을 펴내지 못했으며 그 뒤 발표한 시로는 〈통영 統營〉(조광, 1935. 12)·〈고향〉(삼천리문학, 1938. 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학풍, 1948. 10) 등 50여 편이 있다. 시집으로 198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백석시전집〉과 1989년 고려원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을 펴냈다.

 

백석은 해금 시인으로 1920년대 프로 시의 한계였던 이념 편향성을 극복하고 1930년대에 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 속에서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고 고향을 등지고 유랑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 우리 민족의 삶의 현실을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시어와 감각적인 표현으로 우리 민족의 공동체적 의식을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목적 문학에서 벗어나 리얼리즘 시로서의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백석의 시는 향토적인 토착어의 적절한 활용과 우리 민족의 공동체적 풍경을 배경으로 한 원초적 삶을 조명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 율격과 접목하여 산문시의 가능성을 보여 준 점과 삶의 리어리티를 통한 민족 공동체적 연대감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등도 빼놓을 수 없다는 특징 중 하나이다.


백석의 시는 1930년대 후반의 한국 현대시가 지향하고자 했던 시적 성과를 통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다채로운 시적 심상을 활용하여 시적 공간을 감각적으로 확장하였으며 그 속에 고향이라는 원초적인 체험의 공간을 담아 놓고 있다. 이러한 시의 방법은 한국의 근대시가 감각적으로 섬세해지고 정서적으로 깊이를 가지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시는 시적 형식과 시의 정신을 합일화함으로써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토속적 서정의 세계를 소박하게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가장 순수한 서정 시인이며 사상성을 詩에 훌륭하게 간직했던 시인으로 현학적이며 외래적인 시풍을 과감히 배격하여 관념적이고 공허한 동시대의 詩들을 부끄럽게 하였다. 백석은 릴케보다도 더 감수성이 예민하고, 서민적이고, 솔직한 시를 썼다. 푸시킨 보다도 더 쉽고 아름다운 시를 썼고, 도연명 보다도 더욱 진실하게 자연을 사랑하는 훌륭한 시를 썼다. 백석은 이태백의 현학적이고 화려함을 현실적으로도 능가한다. 그리고 백석은 이 모든 유명 시인들의 정치성을 배격하고, 외국의 들뜬 싸구려 감정의 낭만적인 시들을 거부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대에 입방아만 찧던 싸구려 외국 시들을 부끄럽게 하는 유일한 시인이다.>

라고 송준은 평을 하고 있다.

 

 

백석의 시를 몇 편 감상해 보자!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삿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딜옹배기 : 아주 작은 자배기
*북덕불 : 짚북더기를 태운 불
*나줏손 : 저녁 무렵


이 작품의 제목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편지 봉투의 발신인 주소를 떠올리게 한다. 시의 화자는 남신의주의 '유동'이라는 마음에 있는 '박시봉'이라는 사람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자신의 신세와 회한의 정서를 편지를 써 내려가듯이 적고 있다. 고향과 가족을 떠나 홀로 타향에 정챡해 있지만 자신의 일상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이 시에는 시인의 고향 상실감과 운명론적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다. 화자는 자신의 삶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시의 화자는 어느 산 바위 옆에 눈을 맞고 외로이 선 '굳고 정한 갈매 나무'를 생각하며 자신 또한 굳세고 깨끗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마가리:오막살이

 

제목부터가 우리에게 다소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토속적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 도피적인 유랑 의식과 모더니즘 시풍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화자인 '나'의 처지가 가난하고 쓸쓸한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 화자는 '나타샤'를 사랑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자는 현실을 떠나 깊은 산골로 가기를 원하고 있다. 화자는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행위가 현실에 패배하는 것 이 아니라 더러운 현실을 능동적으로 버리는 행위임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시대적 아픔과 고민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 시인 의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사랑에 대한 환상적인 꿈은 '눈', '나타샤', '흰 당나귀' 등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미지의 조화를 통해 환기되고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들은 다분히 이국적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색채를 띠고 있다. 그러나 현실과의 괴리 탓으로 이 시는 환상적인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고 우수 어린 정조가 짙게 배어있다.

 

권번 출신이었던 나타샤는 서울 성북동에서 고급 요정 대원각을 운영했다.
“배운 것도 많지 않고 죄가 많다”던 그는
타계하기 전, 7,000여 평의 요정 부지를 법정 스님에게 기증했다. 그 터에 문을 연 절이 길상사다. ‘나타샤’는 불교신자도 아니었다. ‘무소유’의 스님을 신뢰하며  “남은 한(恨)으로 절의 종을 힘껏 치고 싶었을 뿐”인 여인이었다.
마지막 100억원 대의 부동산을 사회에 환원시킨 후, 나타샤는 세상을 떴다.
백석도 길상사가 창건되기 2년 전 북에서 작고했다.

출처 : 월북작가 대표문학 18 白石. 吳章煥. 金朝奎 서음출판사(1989)

 

 

여승(女僧)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시집 {사슴}, 1936)

 

* 가지취 : 취나물의 일종.

* 금덤판 : ① 금광.  금점판

                ② 조선 때, 호조나 공조에 딸려 금광(金鑛)의 세금을 거두던 관청

* 섶벌 : 재래종 일벌.

* 머리오리 : 머리카락의 가늘고 긴 가닥.

 

 

이 시는 한 여자의 일생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한 여인의 일생, 가족 구성원들이 상실되면서 일어나는 삶의 비애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 가족은 지아비와 지어미 그리고 딸아이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농사일을 했을 법한 지아비는 광부가 되어 집을 나가고, 아내는 남편을 찾아 금점판을 돌며 옥수수 행상을 하고, 그 고생에 못 이겨 딸은 죽어 돌무덤에 묻히고, 자신은 산 속 절간에서 삭발을 하여 여승이 되었다.

절제된 시어와 직유의 표현 기법으로 일제 강점기의 민족 현실을 전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섶벌'처럼 일터를 찾아 나간 지아비, '가을밤같이 차게' 울면서 자식을 때리는 어미, '도라지 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간 어린 딸, 온 가족을 잃고 여승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 산 꿩의 울음이 곧 여인의 울음이요, 여인의 머리 오리가 곧 눈물이다.

이 여인의 삶의 역정을 생각하면서 화자는 불경처럼 서러워한다.

이 시는 사회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리얼리즘 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우난 곬족(族)*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後妻)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 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오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 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 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육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여우난 곬족 : 여우난 골 부근에 사는 일가 친척들.

*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 아버지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 포족족하니 : 빛깔이 고르지 않고 파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 매감탕 : 엿을 고거나 메주를 쑨 솥을 씻은 물로 진한 갈색.

* 토방돌 : 집의 낙수 고랑 안쪽으로 돌려가며 놓은 돌. 섬돌.

* 오리치 : 평북 지방에서 오리 사냥에 쓰이는 특별한 사냥 용구.

* 반디젓 : 밴댕이젓.

* 저녁술 :저녁 숟가락 또는 저녁밥.

* 숨굴막질 : 숨바꼭질.

* 아르간 : 아랫간. 아랫방.

* 조아질하고 - 제비손이구손이하고 : 아이들의 놀이 이름들.

* 화디 : 등장을 얹는 기구. 나무나 놋쇠로 만듦.

* 홍게닭 : 새벽닭.

* 텅납새 : 처마의 안쪽 지붕.

* 무이징게 국 : 민물새우에 무를 넣고 끓인 국.

 

백석 시는 초기에는 대체로 평북 사투리와 토속적인 소재의 선택으로 농촌 공동체의 원형적 정서를 그려 내다가, 후기에는 여행을 통한 풍물시와 모더니즘 시풍을 보여 주는 특징을 갖는다. 이 시는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명절날의 풍경을 통하여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유년기 화자의 순진 무구한 정서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위해서 산문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속에 구수한 사투리와 다양한 이미지 수법을 개입시킴으로써 푸근한 고향 정서를 환기시켜 주는 한편, 문장 종결형을 현재 시제로 하여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독자에게 직접 말하고 있는 느낌을 전해 주고 있다.

 

우선 이 시는 유년의 '나'가 체험하는 명절날의 풍속을 시간적 경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서사적인 시간 구성을 지니고 있다. 즉 명절날 유년의 화자가 '엄매 아배를 따라' 큰집으로 나서면서부터 저녁과 밤, 다음날 아침까지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시간적 경과에 따라 서사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내용상으로 보면 크게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화자가 부모님과 같이 큰집으로 명절 나들이를 떠나는 모습으로, '개'까지 따라 나선 명절날의 유쾌하고 들뜬 분위기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둘째 단락은 큰집에 도착하여 명절날에 한데 모인 일가 친척들의 모습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단순히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서 회화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얼굴 모습과 표정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그들의 성격, 취미, 행위, 사는 곳, 삶의 내력까지도 낱낱이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친척들 개개인에 대한 성격을 창조하면서도, 그들의 인생 역정과 삶의 정황을 압축된 서사로 표출함으로써 한결같이 평탄치 못한 친척들의 인생을 가늠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와 다른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 모두의 평범한 이웃이 되기에 충분하다.

 

셋째 단락은 이러한 일가 친척들이 안방에 모여 있는 모습과 명절날 풍성하게 장만된 음식물에서 느끼는 유년의 정서를 다채로운 감각적인 묘사로 표출하고 있다. 여기서 표출되는 감각적 이미지는 후각과 촉각인데, 이 가운데서 특히 후각적 이미지 구사가 돋보인다. 즉, 명절날 설빔으로 입은 옷의 느낌을 '새옷의 내음새도 나고'라고 함으로써 시각을 후각으로, 여러 음식물을 '…… 내음새도 나고'와 같은 후각적 이미지로 표출함으로써 명절날 특유의 신선한 분위기와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넷째 단락은 저녁밥을 먹고 난 후 아이들끼리 흥겹게 노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다섯째 단락은 밤이 깊어 일가 친척들이 방안에 모두 모여서 엄매들은 엄매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각기 모여 앉아 즐겁게 노는 모습을 서술한 다음, 유년의 화자가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새벽까지 잠이 드는 모습을 서술하면서 명절날 겪은 이야기를 마감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명절을 즐기는 공동체의 풍요로움을 다양한 시적 대상을 동원하여 표현함으로써 끈끈한 인간적 체취를 물씬 풍기게 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고향을 상실한 일제 암흑기에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원초적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여린잎이 나뭇가지에 새록새록 피어나더니 바람이 살랑살랑 불때마다 점점 커지더니 지금은 그 빛깔이 진해지면서 어느새 나무마다 울창한 느낌을 주는 계절이 되었다. 푸르른 계절에 백석을 좀더 깊이 알아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만난적 없는 문인들을 자료를 통해서 만나는 일은 참 흥미진진하며 매력이 있다.  한 여인을 사랑하는 것도 글을 쓰는 일도 그에게는 모두 소중하고 귀한 일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나는 백석을 알아보면서 글속에 심한 사투리를 그대로 써놓은 것이 일제 시대에 민족의 영혼을 빼앗기기 싫어서 토속적인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에 크게 감동하며 그런 분들이 한분두분이 모여서 지금의 이 나라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가을이 오면 낙엽이 뚝뚝 떨어질 것이고 그때 나는 또 백석의 눈발이 푹푹 날리고 눈발이 푹푹 쌓이고...라며 중얼거릴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겨울이 되어 눈발이 세차게 내릴때가 되면 다시 나타샤를 사랑했던 백석을 떠올리며 한시대를 살아냈던 한 사람의 문인을 잠시 그려 보게 될 것이다.

 

- 백석의 연보와 주요시집-

 

1912 년 평북 정주 출생
1929 년 오산고보 졸업. 동경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 공부
1934 년 귀국후 <조선일보> 입사
1935 년 시 <정주정>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데뷔, 함흥여생여고보 교원역임
1942 년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업무에 종사
1945 년 해방 후 북한에서 문필활동

 

 주요저서 시집목록

 

1936 년 사슴(시집)
1987 년 백석시전집(시집)
1989 년 흰 바람벽이 있어(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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