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주제 발표물 제출

기독교 자연관

작성자서종규|작성시간11.11.22|조회수32 목록 댓글 0

기독교 자연관

  

오늘날 환경오염과 생태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 설정에 대한 문제는 이제 신학의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으로 제기되는 기본적인 근거 틀이 되었다. 특별히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현시대의 환경문제를 바로 이해하고, 창조보전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이러한 고민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자연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다. 장도곤 같은 학자는 자연정복사상, 자연숭배사상, 그리고 자연친화사상으로 정리해서 분류하고, 그나나칸은 관계의 측면에서 인간중심주의, 자연중심주의, 신중심주의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또는 기계론적 자연관과 범신론적 자연관, 그리고 유신론적 자연관으로 구분해서 말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 자연,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유형화된 것이다. 이들 각각의 입장을 간략하게 알아보고 오늘날 환경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으로 하나님 중심적 자연관에서 대해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우선, 기계론적 자연관에서 대해서 알아보자.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사상적 원인은 근대 자연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주장한 기계론적 세계관에 있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중세의 신학적, 종교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자연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코자 하는 과학적 관심에서 등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과 자연환경을 분리시키고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세움으로써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착취를 가능케 했으며, 소유와 힘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과학기술을 촉진시키고, 자유 시장경제를 질서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오늘의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 근대 초기의 기계론적, 이신론적 세계관은 결국 물질론적(유물론적), 무신론적 세계관으로 발전한다.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모든 종교적, 신학적 전제는 배제되고, 세계는 단지 하나의 물질적 기계로 이해된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자연세계의 현실에서 배재되어버린다. 이로써 근대 자연과학의 “방법론적 무신론”(methodological atheism), 곧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히 배제한 채 세계의 모든 것을 물리적, 화학적 법칙에 따라 설명하는 과학의 방법이 확립된다. 이러한 자연관을 확립한 사람은 바로 근대 과학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뉴톤이다. 그는 자연을 하나님에 의해 고안된 비인격적인 덩어리나 힘으로 보아 매우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주장했다. 또한 베이컨은 인간과 자연의 다른 존재들과의 사이에는 본질적인 연속이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연을 하나의 대상, 즉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본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적인 자연세계를 날카롭게 분리한 것이다. 이렇게 근대 과학은 자연의 신비를 철저히 벗겨 내면서 등장했다.

 

그러나 최근에 이러한 전통적인 자연관에 대해서 “생태주의”(biocentrism)는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생태주의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이에 대한 사상적 기반인 근대철학을 생태계 위기의 원인으로 설정하고,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적 자연관과 세계관의 근본적인 변화에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태주의자들은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구분지어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수정하여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심지어는 인간과 무생물까지도 같은 운명 공동체라는 새로운 통합적 사고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19세기 낭만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에머슨이나 뉴잉글랜들의 초절주의 시인들, 그리고 루소와 괴테와 같은 문호가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오늘날 생태신학을 주장하는 이들은 모두 자연숭배사상에 깊이 동화되어 있는데, 이는 기도교가 생태시학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20세기 후반인 1970년대부터 급격히 형성되었다. 이들은 기독교를 주로 동양사상 또는 신비주의와 접목하여 우주의 모든 만물은 생명체나 무생명체를 막론하고 신성을 소유한다고 주장한다. 심한 경우 자연이 신과 동등한 위치로 승격되어 인간의 예배의 대상으로 선포되기도 한다. 이들은,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 동일한 자위를 보유한다고 주장한다. 생태 중심적인 이들은 인간이 자연에 봉사하기 위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놀랄 것도 없이 칼빈도 자연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은 경건하게 말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하나님은 우주의 전 창조 속에서 매일 자신을 나타내시며, 이러한 자연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극장이며 거울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온 인류에게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물리세계를 자신의 신학적 사유의 가장 중요한 틀로 사용한 미국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조나단 에드워드 역시 신성의 그림자와 이미지로서의 자연에 대해서 잘 설명했다. 그러나 생태주의자들과 이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이다. 성경의 안목은 단순히 인간 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theo-centric)이며 잘 따져보면 그 속의 창조개념은 모든 생명체를 포괄하여 자연 전체가 가치를 가진다. 성경이 말하는 창조는 우선 자연의 신격화를 막는다. 자연이 누군가에게 의해 만들어졌다면 궁극적인 관심은 만든 분을 향한다. 자연은 분명 인간을 위하여 있다. 자연은 인간에 대한 자연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자연을 마음 놓고 함부로 대상화할 수 없는 이유는 자연은 인간에 대하여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에 대하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주체이다. 피조물 신앙에서 자연은 어디까지나 사람에 대하여 있다. 다만 하나님께 대하여도 있을 뿐이다. 여기에 자연이 인간의 상태가 되어 공생공존하는 길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자연을 이용하되 착취하지 못하는 길이다. 자연을 피조물로 보는 관점은 산업사회 속에서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현대인에게 귀한 신앙의 유산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이라는 세 축에서 누구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환경윤리적 함의를 가진 입장들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자연을 피조물로 보는 신앙을 통해 자연을 신격화하지 않으면서 착취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중심으로 자연을 볼 때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 때 비로소 자연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거울이 되며, 종교성을 담지하고 있는 하나님의 몸이 된다. 거스탑슨(James M. Gustafson)의 말처럼, 자연의 능력을 통해서 인간은 신적 감성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이성적인 감각 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감정까지도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들이 자연으로부터 윤리적 자세를 배울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존중하고 아낄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하나님 중심적 사고로 다시 재정립 할 때, 오늘날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생태주의적 사고와 인간중심적 사고의 오류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첨부파일 기독교 자연관.hwp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