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이파크 축구단는 부산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단이다. 1983년에 대우 축구단으로 창단되었으며 원년 멤버로서 K-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원년부터 강호의 모습을 보여준 부산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자리잡아갔다. 특히 양지 축구단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최초로 아시아를 제패하였으며, 1997 시즌에 시즌 전관왕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대우시절이 끝나고 현대산업개발의 인수 이후 성적은 점점 내려 앉았다. 2007 시즌에는 최초로 두 자릿수 순위로 내려앉은 해였고, 3년 연속 한 자릿수 진입에 고전하고있다.
홈 구장은 64,640석 규모의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이 다. 하지만 경기장 특성상 관중석과 피치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어 경기 관람의 애로점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경기장 규모가 팀의 평균관중에 비해 지나치게 커서 몇 년간 관중 동원면에서 K-리그 최악의 성적을 받아왔다. 이에 구단측은 구단 클럽하우스가 있는 부산 강서 체육공원에 전용구장을 지어 이전하는 것을 추진했으나[1] 여의치 않게 되어 2008 시즌부터는 육상 트랙 위에 가변좌석을 설치하였다.

대우 로얄즈 초창기 (1983-1985) [편집]
1983년 원년에는 대우그룹을 모기업으로 유지하면서 실업축구단으로 수퍼리그에 참여했으며 1983년에 우승 팀인 할렐루야 축구단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하였고 그 해 최다 관중을 동원한 팀으로 기록되었다(16경기, 34만 7895명). 당시 대우그룹은 매 홈경기때마다 자사의 자동차, VTR, 냉장고, 세탁기등을 경품으로 내놓는 파격적인 이미지 마케팅 전략을 선보이며 당대에 회자가 되었고 덕분에 대우 홈경기는 연일 만원 행진을 벌였다.
1983년 12월 3일 국내 프로 축구단 제 3호로 재창단 하면서 클럽 공식 명칭을 대우 로얄즈로 변경하고 1984년 축구대제전 수퍼리그에 참가했다. 보통은 모기업의 이름인 대우라고 불렸고 그 해 1984년 8승 4무 2패 승점 29점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84시즌 MVP 박창선, 감투상 정용환, 지도상 장운수 이상 대우 로얄즈)
대우 로얄즈의 전성기 및 아시아 제패 (1986-1999) [편집]
1986년, 72년 이후 14년 동안 중단되었던 제 5회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이 재개되었는데 이 대회에 대우 로얄즈가 출전, 결승전에서 알 알리를 3:1로 꺾고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클럽팀이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하게 된다(종전 기록은 69년 제 2회 AFC 챔피언스 컵에서 중앙정보부 산하의 양지 축구단이 준우승한 기록이 전부였다). 이듬해인 1987년 2월에는 아프로 아시아 클럽챔피언쉽에 AFC 챔피언스 컵 우승 팀 자격으로 출전, 아프리카의 레자 카사블랑카팀 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아프리카-아시아를 통틀어 최강의 축구 클럽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같은해 대우 로얄즈는 16승 14무 2패를 기록하여 K-리그 2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까지 성공하며 최전성기를 누렸다. (87시즌 MVP 정해원, 신인왕 김주성, 지도상 이차만, 모범상 박노봉 이상 대우 로얄즈)
1988년에는 88 서울 올림픽 축구대표로 주전 선수들이 대거 차출되면서 최하위를 기록하였고 이듬해인 1989 시즌에도 3위에 머물자 이차만 감독이 경질되고 90시즌 동독 출신의 프랑크 엥겔감독을 대우 로얄즈의 사령탑에 앉혀 K리그 최초의 외국인 감독 영입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1991년 프랑크 엥겔에 이은 2번째 외국인 감독으로 헝가리대표 출신의 비츠케이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끝에 17승 18무 5패로 K리그 3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성공했다. 91시즌 세운 K리그 21경기 연속 무패 기록은 이후 97시즌 전남 드래곤즈가 21경기 연속 무패 기록 타이를 세웠을 뿐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91시즌 MVP, 모범상 정용환, 수비상 박현용, 지도상 비츠케이 이상 대우 로얄즈)
1996년 K-리그에 완전지역연고제가 도입되자 대우는 기존의 부산 연고지를 그대로 가져가며 구단 공식 명칭을 부산 대우 로얄즈 (釜山 大宇-)로 개명하였다. 1997년에 정규리그는 물론이요 컵대회인 아디다스컵과 프로스펙스컵 우승을 거머쥐게 되면서 1997시즌 프로연맹 주관 모든 대회를 완전석권하는 천하통일을 이루는 전관왕 대업을 달성하게 된다. 동시에 프로축구 K-리그 최초의 리그 4회 우승의 업적도 달성하게 된다. (97시즌 MVP, BEST 11 DF-김주성, BEST 11 GK-신범철, MF-정재권, FW-마니치, 지도상 이차만 이상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아이파크 (2000-현재) [편집]
모기업 대우의 부도 사태 이후 2000년에 현대산업개발에서 구단을 인수하여 구단명을 부산 아이콘스로 변경하였다. 2003년 말에는 서울로 연고이전을 선언했으나 현 FC 서울에 밀려 연고이전을 취소했다. 이에 대해 팬의 분노와 배신감을 담은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구단에 대한 여론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5] 2004년에는 FA컵 우승을 기록했다. 2005년에 열린 통영컵에서부터 구단명을 현재의 부산 아이파크로 변경했다. 2005년엔 전기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7년 7월, 스위스 출신의 앤디 에글리 돌연 사퇴 후 7월 18일에 후임으로 박성화 감독이 취임했으나 17일 만인 8월 3일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자 사퇴를 발표했다. 이에 서포터즈인 POP는 이번 사태를 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6] 8월 18일 붉은악마도 이 사건을 개탄하는 성명서를 내면서 보이콧을 한다고 밝혔다. [7] 2007 K-리그가 종료된 후 황선홍 전 전남 드래곤즈 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하였고, 2008년 1월 20일엔 스타 공격수 안정환을 영입하는 등 과거 인기구단의 명성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8] 황선홍 감독의 데뷔 시즌인 2008 삼성 하우젠 K-리그에선 12위를 기록했고, 2009 K-리그에서도 12위로 시즌을 마쳤다.
2009 K-리그에서는 12위에 머무르며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거뒀으나, 2009 피스컵 코리아에선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리그에선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거뒀지만, FA컵에서는 결승전까지 올라 대회 우승과 다음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놓고 수원과 격돌하였으나 수원에 승리를 내주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부산은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한 채 계약 기간이 만료된 황선홍 감독과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새 감독을 물색한 끝에 서울의 안익수 수석코치를 차기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축구도 있는지는 잘 몰랐네요;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