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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80)

작성자하심|작성시간26.06.05|조회수18 목록 댓글 0

백자를 선택한 조선의 마음

 

우리의 옛 도자를 따라 천 년의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고려 청자와 조선 분청자의 세계를 돌아봤습니다,

7장에서는 소선 백자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15~16세기에 제작된 백자의

양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날 세계 도자기 발전의 중심국이 중국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중국 도자는 선사시대 이후 만여 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통해 주변 나라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14세기를 경계로 청자 중심에서 백자 중심의 역사로 변화하였는데 이 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1.300도 C의 고온에 견딜 수 있는 단단한 자토인

”고령토“의 발견과 활용에 있습니다,

더불어 대제국이었던 원나라의 흰색에 대한 선호도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14세기를 기점으로 경덕진 에서는 고령토를 사용한 경질의 백자를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더 나아가 코발트 등의 여러 가지 안료를 사용한 다양한 백자의

제작이 시도됩니다,

원대의 청화백자와 유리홍 백자에 이어서 명 청대 이후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에나멜로 그림을 그린 채색 자기가 주류를 이룹니다,

이를 통해 중국 도자의 또 다른 장이 펼쳐졌습니다,

체색자기의 정교한 표현과 화려한 색채는 이전의 중국 자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초 주자학의 유입과 백자의 확산 과정

 

우리나라에서도 15세기 이후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백자가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 잡아 나갑니다,

조선 초 청자에서 백자로 자기의 중심이 전환되는 배경을 살려보는 것은 당시

동아시아의 시대적인 변화 양상까지 내포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백자가 주류로 부상하는 움직임은 이미 14세기 후반 고려 말에서부터 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 체제 아래 한족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족의 사상적 원천은 주자학이었습니다,

송대에 성립된 주자학은 인간의 삶에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현실 생활 덕목으로 청렴과 검소함을 강조하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한족들이 이민족인 원을 정치 세력과

결탁하지 않는 지조를 지켜내며 이른 현실에 초탈한 군자로 격상하였고 이들이

삶은 청렴결백한 삶으로 이상화하였습니다,

이들의 정치 문화적 행보는 원 간섭하에 있던 고려 지식인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줍니다,

 

충렬왕으로 이어지는 13세기 말~14세기 초, 원의 수도인 대도의 만권당에서

고려와 중국의 학자 및 지배계층들이 활발하게 교류하였습니다,

이제현 이색 등으로 대표되는 고려의 지식인들은 조맹부를 비롯한

중국의 기라성 같은 당대 학자들과 교우하여 원에서 유행하던 다양한 화풍과

서체들을 접했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여말선초의 새로운 문화적 자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안향(1243~1306)은 주자학을 국내에 들여온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로 1289년

충렬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주자서를 직접 베끼고 공자와 주자의 진상을 그려

가지고 돌아온 인물입니다,

안향을 통해 유입된 주자학은 원 간섭하의 고려 말기 변혁을 이끈 사상적 동기가

되었습니다,

또 이미 오랜 기간 부패와 부정으로 얼룩진 불교에 대한 불신이 더해져 전통적인

불교국가인 고려에서도 숭유억불 정책이 서서히 고개를 들이 시작했습니다,

주자학이라는 이론적 바탕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 계층이 고려 말의 청치적

주도권을 잡으면서 성리학은 새로운 시대 이념으로 두각을 나타냅니다,

성리학자들은 나아가 홍건적과 왜구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이성계 일

파의 같은 무장들과 결탁하여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열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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