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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83)

작성자하심|작성시간26.06.07|조회수17 목록 댓글 0

조선에서 도자의 큰 줄기가 청자에서 백자로 바뀌었고 백자에 코발트로 

시문한 청화백자가 조선 왕실과 사대부들의 선망에 오르자 백자에 대한

수요는 증가일로였습니다,

여기에 명의 무리한 은 조공 압력은 조선 왕실의 그릇을 백자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선은 양질의 백자를 제작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백자를 만드는 일은 겵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도 청화 안료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품목으로 명 초기 선덕

연간에는 멀리 아라비아에서 수마트라 섬을 거쳐서 코발트 광석이 수입되었습니다

어렵게 구한 코발트 광석을 경덕진에서 정제하여 청화백자 제작에 사용하였습니다,

이때 코발트 가격이 금값보다 높았다고 합니다,

코발트의 수입은 중국 명대의 수군 제독이자 외교관이었던 정화(1371~1435)의

남해 원정을 통해서 가능했으나 명나라가 적극적인 대외교류정책에서 해금

정책으로 전환하면서부터 청화 안료를 비롯한 아라비아의 물건들이

유입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1440년대 이후 조선 역시 청화 안료를 구할 수 없게 됩니다,

 

청화 안료를 구하기는 어렵고 백자에 장식무늬는 그려야 하는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상감 백자였습니다,

아백색의 그릇 표면에 자토를 상감한 백자들이 이 시기에 제작되었습니다.

초기에 백자는 상앗빛이 감도는 아백색을 띱니다,

아백색 표면에 무늬를 파고 그것에 자토를 감입하여 구워내면 고려시대

삼강기법을 도입한 상감 백자가 만들어집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많은 수의 상감 백자를 분석해 보면 1440~1470년대까지

대체로 15세기 중후반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상도 언양에서 출토된 백자상감초화문편병은 야외용 술병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분청자 편병의 굽보다 높은 굽을 가진 이 편병은 동체에 변형이 심한

모란당초 무늬가 백토에 자토를 감입한 흑상감 기법으로 베풀어져 있습니다,

1.466년 명이 있는 묘지석과 함께 출토된 이 작품은 절대연대를

알려주는 지표로서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작품 자체는 뛰어난 조형미나 장식성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상감백자로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라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백자상감초화문편병과 같이 출토된 묘지석에는 진양군영인정씨지묘

(晉陽郡令人鄭氏之墓)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호패 같은 모양에 상부를 연꽃으로 표현하고 도체에 줄을 그어 글씨를 쓰는

표현 양식이 조선 초기의 비석과 유사합니다,

유색은 노란색이 은은하게 감도는 상앗빛입니다,

태질은 연질 계통에 속하여 표면에 코발트로 무늬를 그려 넣은 경우

시커멓게 발색될 것입니다,

이 정도 수준으로는 한정된 형태의 경질 백자라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청화 안료 대신 상감기법으로 지석에 글을 쓰고 무늬를 그린 것입니다,

이 지석은 함께 발굴된 편병이 1466년에 제작되었다. 는 사실을 알려준

중요한 조선 초기의 유물입니다,

조선을 스스로 백토를 찿아내어 백자를 만들었지만 코발트의 수급은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명나라에서도 청화 안료가 유출되지 않도록 엄중하게 관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조선 왕실에서는 청화백자 대신 상감백자를 제작하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 시기부터 상감백자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상감백자는 1466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이 유물을 통해 15세기 중반 백자의 제작 양상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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