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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88)

작성자하심|작성시간26.06.10|조회수20 목록 댓글 0

가장 조선적인 백자의 아름다움

 

8장에서는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후반까지 150년간의 조선 문화를 통해 조선의

백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백자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인 배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 후 조선 사회의 변화 실학의 발전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조선은 유교 이념이 더욱 강화됩니다,

이로 인해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 따라 이상주의적인 왕도 정치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보다 구체화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방 곳곳에 유교 정신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서원이 설립됩니다,

또한 서원과 함께 향약이 널리 확산되면서 제사 중심의 유교 사회가 본격화 되어

유교적 덕목들이 생활 윤리로서 구현되었습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유학을 학문적 시각으로만 보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생활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를 모색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율곡과 퇴계가 주장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등은 중국에서 건

너온 주자학을 조선화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자가 제시했던 이념이

현실 생활로 확산되는 학문적 전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이 퇴계와 율곡이 세계적으로 주자학을 심호시킨 유학자로서 널리 칭송을

받는 이유입니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청렴결백입니다,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은 유학자들이 숭상하는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유교 사상의 근저는 조선인들이 즐겨 입던 “무명옷”에우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려말 전래된 무명옷이 보편화된 시기는 16세기입니다,

무명옷의 백색과 빳빳한 풀을 먹였을 때 햇빛에 감도는 옅은 청색 빛깔을

유학자들이 추구하던 검박함에 정서적으로 걸맞아 무명옷은 조선 사회에

널리 퍼져 민족의 일상복으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바야흐로 조선에 백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성리학이 정착되고 유교의 덕목들이

생활 속에 뿌리내리면서 강조된 청렴결백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바탕위에 코발트로 그림을 그려 넣은 조선의 청화백자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먼저 흰바탕을 만든 후에 그리는 것이다.” 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도자기에 실

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당시의 사대부을은 아름답고 화려한 옷에 현혹되기보다는 소박하고 흰 무명옷을

낡고 헤질 때까지 빨아서 다시 입는 번거로움을 수고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는 청렴결백의 사상과도 일치하며 사물의 외양보다는 그 속에 담긴 본래의 이치를

깨달은 후에야만 결백함과 순결한 아름다움을 비로소 알 수 있다는 성리학의 이념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자기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특별한 장식무늬 없이도 그 외형과 백자 고

유의 빛깔에서 나오는 새하얀 아름다움을 추구한 듯합니다,

물론 16세기에 만들어진 도자기 중 화려한 예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당시

그릇들은 주로 백색을 지향하였습니다,

 

백자의 백색도 자세히 보면 그 모습이 약간씩 다릅니다,

겨울 눈빛이 도는 흰색 약간 푸른기가 있는 흰색 젖빛이 나는 흰색 회색에 가까운

흰색 등 같은 백색 안에서도 이처럼 다양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 중기에 회색이 감도는 백색 즉 회백색의 백자가 선호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요업 상황과도 관련이 있지만 조선 중기의 미감을 반영했다고 보여집니다,

 

당시 사회는 성리학을 현실 이념으로 정착하기 위한 학문적 논의가 정치이념과

결홥되면서 사상의 날카로운 대립 양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합니다,

16세기 후반~17세기에는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분화되어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의 사색당파가 형성되었고 당쟁이 격화됩니다,

그러한 이론들의 대립 역시 종단에는 한 가지의 실천이론에 다가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오직 한 가지 색을 추구하던 조선백자의

정치는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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