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91)

작성자하심|작성시간26.06.11|조회수18 목록 댓글 0

18~19세기에는 그릇의 기형이 더욱더 다양해져 드물기는 하지만 표주박

형태의 백자병도 만들어집니다,

18세기가 되면 백자에 청화 안료로 무늬를 베푸는 방식으로 발전합니다,

청화백자를 사용한 예는 여러 의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6~17세기 의례에 보면 대나무 상 위에 청화백자 꽃항아리가 놓여 있습니다,

 

용이 그려진 항아리는 주로 왕실용 그릇으로 상체가 강조되어 위쪽이

큰 느낌을 줍니다,

왼쪽의 청화백자 항아리는 아가리가 약간 안으로 기울어졌고 장식이

화려합니다,

동체 하부에는 겹 연판무늬를 그려 넣어 화려함을 더했고 중앙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예부터 무한한 우주의 기가 항아리에 담겨 있다고 믿었으며 거기에 술을

담아 의례를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항아리는 몸통에 그려진 용무늬 때문에 용준이라고 불렀는데

후대에는 용춘으로 잘못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또 한가지 특징으로는 긴 목을 들 수 있는데 당시에는 목이 긴 항아리들이

계속 만들어졌습니다,

 

16세기 이후에는 비싼 청화 안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도화서 화원들이

직접 백자에 청화 안료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때문에 16세기의 청화백자를 통해 당시 조선에서 유행하던 화풍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임금이 주최하는 여러 잔치에서 쓰였던 용준은 예외적으로 술 항아리보다

꽃 항아리로 많이 이용되었을 것입니다,

 

왕실에는 청화백자를 원했지만, 중국에서의 코발트 수입이 어렵게 되자

부득이하게 산화철로 그림을 그려 넣은 철화백자가 등장합니다.

철화백자는 주된 장식무늬인 구를 속을 날아다니는 역동적인 용의 모습이

주목할 만합니다,

용은 왕실의 상징으로 일반에서는 이 무늬를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어수선해 지면서 지방의 사대부 쓰던 항아리들에 간략하고

표현한 익살스러운 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1996년 뉴욕에서 백자철화용문항아리가 8백30만 달러에 거래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80억이 넘는 이 항아리는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상

최고가에 거래된 예입니다,

일반인들은 장미꽃 넝쿨이 우거진 집이라 하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공감하지

못하지만 집의 가격을 얘기하면 모두들 아름다운 집이라 공감한다고

했던 어린 왕자의 말처럼 17세기 항아리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려드리기

위해 예를 든 것입니다,

 

백자의 장식무늬 중에는 야생의 풀꽃들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가을 국화와 난초 갈대 패랭이꽃 대나무 등은 문기(文氣)가 있으면서도 소박하고

청초한 맛을 지닙니다,

17세기 후반 조선 내부로의 관심과 시선이 백자 그릇의 장식무늬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자기에는 백자뿐만 아니라 흑자도 발견됩니다,

백자가 자기 생산량의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마치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검은 유약을 바른 자기들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오른쪽의 흑유 편병은 분청자 편병을 본떠 동체 양옆을 적절히 눌러 만들어서

이동에 용이한 그릇입니다,

태토가 거친데다 철분이 많이 함유된 유약을 써서 그릇이 더욱 까맣게 나왔습니다,

이런 흑자는 백자에 비해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흑자는 매우 드물게 출토되는 편으로 15세기 말~16세기의 전라도 고창 용산리

가마 등지에서 제작되었음을 최근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