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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95)

작성자하심|작성시간26.06.14|조회수23 목록 댓글 0

조선 후기 다채로운 백자의 세계

 

9장에서는 조선 후기 백자의 흐름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조선백자를 전체적으로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사회는 크게 변화하였습니다,

전란 후의 혼란을 이겨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면서 기존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간에 이상적인 모델로 중국 문화에서 벗어나 조선의 문화를 재인식하고 발견하려는 움직임이 17세기 후반 노론 세력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조선 후기 실학이라고 하는 우리의 지리 풍습 역사 등에 대한 새로운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한글 소설과 판소리의 유행 진경 산수화의 등장은 자기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철이 든 조선이 자아를 찾고자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바탕위에 18세기의 조선적인 문화가 꽃피게 된 것입니다,

 

순박하고 고아한 품격의 아름다움, 달항아리

 

오늘날 달항아리라 불리는 후덕하고 원만한 비대칭의 백자는 18세기 조선의 변화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백자가 널리 유행하였는데 중국은 채색자기가 수요와 생산의 주류를 이루어나갑니다,

백자 위에 에나멜로 그림을 그리고 약 700~800도 C에서 다시 구워낸 삼채 혹은 오채 등의 채색 자기는 무늬가 화려하고 정교한 특징을 지닙니다.

일본도 17세기 후반 이후 아리타를 중심으로 채색 자기인 이마리 자기나 가키에몬 자기 등이 유행하였습니다,

 

유독 조선의 자기만이 다른 길을 걷게 된 까닭은 청나라의 오랑캐 문화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는 데 치중하면서 소박하고 간결한 백자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일찍이 상업화에 눈을 떠 유럽에 자기를 수출하여 막대한 부를 누리게 된 것도 비교하면 오늘날 조선의 자기가 받는 미학적 평가는 상품의 가치보다는 자기가 갖은 독자적이며 내면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하여 이루어낸 결과라 생각합니다,

 

조선 후기 도자기의 형태와 장식무늬를 살펴보면 18세기 조선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조선 영조의 치세 아래 비교적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던 때입니다.

이 시기 백자에 베풀어진 주된 무늬는 들꽃과 풀로 가장 주목할 만한 소재입니다,

우리 눈에 익숙한 조선의 산천에 핀 자연이 백자의 장식무늬 소재가 된 것입니다,

백자에 그려진 소박하고 깔끔한 들꽃을 통해 사대부들이 가지고 있던 조선 산천에 대한 애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대표하는 분원 금사리 가마의 설백색 백자는 조선 왕실 자기의 고결한 미학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수화 김환기 선생은 1940년대부터 산업화로 변화하기 시작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장 한국적인 맛을 잃지 않은 것이 백자 달항아리라고 여겨 이를 작품속에 표현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른쪽의(백자와 꽃)은 수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받침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달이라라기 보다는 달항아리를 표현한 것 같습니다,

백자의 빛깔이면 그 둥근 형태가 주는 풍족함 등을 마주할 때마다 새롭고 정감이 가는 이유는 작품의 주제인 항아리가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달항아리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동체 중앙의 이음 자국과 설백색을 기본으로 우윳빛이 감도는 유색을 보는 이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안겨줍니다,

항아리의 입은 굽보다 넓으며 높이는 41~47센티미터 정도로 전체 크기가 제법 큽니다,

아가리는 단면이 장타원형으로 도톰하게 마무리되거나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보통 달항아리는 한 번에 그 완형을 완성할 수 없어 반으로 나눠 제작하여 붙이기 때문에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 않습니다,

이 점이 오히려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와 뒷동산에 뜬 달처럼 푸근하고도 형언할 수 없는 우아한 멋이 느껴집니다,

산업화에 이은 빠른 경제 성장 이후 우리 민족의 본질적인 모습을 찾고자 노력했던 과정속에서 부각 된 것이 달항아리입니다,

이 달항아리가 갖는 고유의 순정성은 세계의 그 어떤 그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미의 결청체라 할 수 있습니다,

 

달항아리의 정확한 용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조선 항아리를 수집하던 일본인들이 양반가의 뒤주 위에 이 달항아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이 구전되기도 합니다,

또한 표면에 간장 얼룩 같은 베어 나온 예도 있어 장류를 담는 데도 일부 사용된 듯싶습니다,

솔직히 장을 담는 용도로 끄기에는 아깝습니다,

18세기 후반이 되면 달항아리들은 대체로 푸를 빛깔이 감돕니다,

또한 형태도 원형을 이루며 전체 크기가 작아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후 19세기에는 달항아리의 몸체가 위아래로 더욱 길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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