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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96)

작성자하심|작성시간26.06.15|조회수20 목록 댓글 0

 

멋과 풍류가 녹다든 다채로운 도자 문화를 꽃피우다

 

18세기 후반에는 청나라와의 교류가 원활해져 코발트가 다시 수입됩니다.

이때 조선 문인화의 멋을 도자기에 옮긴 청화백자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아울러 영, 정조 시대에 조선의 산천과 문물을 중시하던 의식이 성장과 함께 전개된 다양한 문화 현상에 따라 도자기의 장식무늬와 기종, 기법도 다양화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문방구류가 많이 만들어져 생활도예로까지 도자기의 영격이 넓어졌습니다,

산화동을 이용하여 장식무늬를 그려 넣은 동화백자 중에서는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색채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수작들이 만들어졌고 산화철로 익살스럽게 무늬를 표현한 백자에서는 조선 민화의 해학적인 멋을 들어다볼 수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청나라의 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북학파들이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 문화의 새로운 기류를 조성하였습니다,

이는 조선 사대부들의 자기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실학이라는 학문적 문화적 흐름에 연결 되었습니다,

 

도자사를 통해 확인되는 조선 후기 사회의 근대적 요소는 서민의 기호와 실생활의 가능성을 담은 도자기들의 제각을 꼽을 수 있습니다,

경제력으로 확보된 중인과 부농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문화의 향유층이 확대 되는가 하면 양반의 수가 급증하여 사대부들의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도 커졌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에 묘사되어 있듯이 18세기 후반~19세기로 넘어가면서 양반 행세를 해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던 모양입니다,

양반 사대부의 필수품인 필통 연적 등의 문방구류가 당시에 많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입니다,

 

양반의 수가 늘면서 제기의 주문량도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종래에 놋으로 만든 제기에 비해 제기는 값이 싸고 관리하기가 쉬워 그 수요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식무늬에서는 십장생이 유행하였고 장수나 행복 등 좋은 일을 상징하는 길상무늬가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장수와 부귀영화 같은 당시 사람들의 현실적 소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려시대에 주로 등장하던 구름과 용 봉황과 학이 다시 그려졌으며 조선 전기에 유행하던“소상팔경도” 역시 자주 사용하는 장식무늬 소재였습니다,

 

도자기의 기형 역시 변화합니다,

도자기가 생활 속 깊이 파고들면서 생활 전반에 사용되는 자기의 형태가 새로이 만들어집니다,

19세기에 조선 문화가 보수화되고 근대적인 사실주의 정신이 퇴조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도자기들의 종류와 장식무늬를 살펴보면 더욱 다양하게 발전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흐름과 상관없이 도자 문화가 더욱 풍성해 지면서 일상생활과 떨어질 수 없을 만큼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대체적으로 조선 후기 백자는 하고 단아한 맛에 주안을 두고 만들어지는데 술병의 경우 팔각으로 모를 깍아 멋들어지게 마무리한 모습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장식무늬의 주제는 대나무 한 줄기나 패랭이꽃으로 여백을 살리는 간결한 구도로 표현됩니다,

이 시기에 간결하면서도 기품 있는 그릇들이 나타나는데 특별히 금사리 시대 혹은 “백자의 시대“ 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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