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색은 유백색 혹은 설백색을 띠고 있습니다,
아래쪽의 유물은 간결한 무늬가 베풀어진 항아리입니다,
동체 아랫부분에 한 줄을 그어 지표면을 형성하고 그 위에 야생화를 단아하게 배치하였습니다,
18세기는 백자의 장식무늬로서 초화 무늬가 유행한 시기로 백자에 아로새겨진 꽃과 풀의 간교하고 청초한 맛이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기와는 다른 정돈된 맛을 느끼게 합니다,
대체로 이러한 초화문 항아리들은 18세기 전반 경기도 광주의 금사리 가마터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다른 백자보다 값이 훨씬 높습니다,
금사리 가마에서 제작된 백자는 청초한 백자의 대명사로 불리며 백자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느낌을 줍니다,
대체로 이 시기의 항아리들에 수(壽)자가 나오는 예가 많은데 만수무강(萬壽無彊)이나 수복(壽福)등의 문구가 주로 등장합니다,
오래 살기를 원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한 문구가 새겨진 항아리들은 주로 잔치 등에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칠보 무늬를 축하하여 길상의 의미를 강조하였습니다,
18세기 후반이 되면 암수 한 쌍의 사슴이 등장하는 장생 무늬가 많이 그려집니다,
한 쌍의 사슴이 불로초를 나누고 그 위로는 서운이 그려지는 배치가 백자항아리에 등장하는 점 또한 18세기 도자의 특입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술병 중에는 목이 긴 형태가 많이 보입니다,
실용적인 면에서 목이 긴 술병은 술을 따를 때 약간 번거로웠을 것입니다,
오른쪽의 백자청화는 중앙에 매화 가지가 크게 자리하고 그 옆으로 술병 주인의 마음을 노래한 것으로 보이는 시 한 수가 적혀 있습니다,
봄이 오기 전 추위와 혹한을 견디면 피어나는 매화처럼 속된 세상의 기운에 쪄들지 않고 고결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담긴 술병입니다,
18세기 후반의 술병에는 시문이 많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한잔 술에 시 한 수를 써내려가던 선비의 정취를 표현하려 한 듯싶
습니다.
또한 호리병 모양의 술병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장식무늬의 주제로 용은 계속 등장합니다,
용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즐겨 그리지는 않았고 남아 있는 작품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용문 백자는 비교적 많은 수가 남아 있습니다,
16세기부터 용의 머리가 커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18세기에는 더욱 커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 백자에 그려진 용은 발이 대체로 3~4개이지만 조선 후기에는 발이 5개입니다,
당시 중국을 비롯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황제를 용으로 표현했습니다,
일본의 용은 발을 3개 우리나라는 4개 중국은 5개로 그리는 규범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청나라가 등장하면서 이런 규칙이 무너져 우나라에서도 임금은 발이 5개 달린 용으로 왕족은 4개 왕자는 3개의 발을 가진 용으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오른쪽 항아리에는 여의주를 집어삼키려는 구름 속의 용이 역동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용이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하려는 의도였는지 동에 아랫부분에는 수초를 그려 넣었고 그릇의 목과 어깨가 만나는 부분에는 대표적인 장식무늬인 여의두 무늬를 배치하였습니다,
영조 시대에 이러한 도자 유형이 하나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자리를 잡는데 주로 궁중의 잔치에서 어주를 담는 용도로 사용했으리라 짐작됩니다,
한편으로 민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18세기 청화백자에 공통으로 등장합니다,
아래쪽의 항아리는 소나무에 앉은 까치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호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화가 난 호랑이는 탐관오리를 상징하고 까치는 민중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어는 겨울날 배가 고프다는 호랑이에게 까치는 얼어붙은 냇물에 구멍을 내고 그 속에 자기 꼬리를 집어넣어 낚시를 하면 붕어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