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100)

작성자하심|작성시간26.06.19|조회수25 목록 댓글 0

18세기 분원의 정착 후에 조선 왕조의 몰락과 함께 사라지다.

 

조선 후기 도자기의 가장 중요한 생산지는 관영수공업장인 분원입니다,

십 년에 한 번씩 도자기 가마의 땔감이 부족할 때마다 분원을 이동해 가던 관습을 지양하고 안정된 도자기 생산을 위해서 분원리에 정착합니다,

분원리에는 배를 통해 운반이 가능한 교토의 요지로 당시 사람들이 판단한 최적지였던 모양입니다,

관요가 분원리에 정착한 시기는 18세기 중반으로 당시 이곳에 상주하는 장인만 해도 552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의 생산방식은 엄격한 분업화로 도자기의 성형을 기종별로 나누어 만들고 그림은 화장이 번조는 불 때기에 능숙한 장인이 전담하는 체계를 갖추어 작업의 효율성을 높혔습니다,

당시 관요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는 대체로 백 개중에 열 개 정도가 왕실에 공납 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난 자기만을 엄선하였다고 합니다,

1.300도C가 넘는 고온에서 좋은 자기를 만드는 일은 현재의 기술로는 쉬운 일이 아니어서 당시에는 완성품을 골라내는 감별사에 해당하는 파기장도 있었습니다,

 

백자 달항아리를 보면 그 형태가 완벽한 대칭이 한쪽으로 치우쳐 비뚤어진 것처럼 생각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를 두고 샐패작이 아닌가 하는데 이러한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그 파기장이 달항아리를 깨트리지 않고 완성품으로서 통과 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술로 약 50센티미터에 이른 크기의 항아리를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위아래 두 개의 큰 사발을 따로 만들어 붙여 구어낸 것입니다,

이때 약 20퍼센트 가량으로 크기가 수축된다고 합니다,

가마의 불길이 닿으면 서로 붙인 자리의 두께와 무게 때문에 오묘하게 일그러진 달항아리가 되는 것입니다,

조선 사람들이 일그러진 형태를 좋아했다고 오해하여 달항아리의 형태를 흉내 내어 만들어 보기도 하지만 그 절대적 미감을 오늘에 되살리지는 못합니다,

 

18세기의 백자 제작에는 양구 지역의 흙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 지역의 흙은 유백색이나 설백색을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19세기에는 해주 봉산이나 광주의 흙을 사용하여 약간 푸른 기가 도는 청백색을 냈다고 합니다,

다양한 백색은 원료인 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의 공장에서 대량생산 체제로 산업화된 자기가 싼값에 들어오고 1880년대 이후에는 조선 왕실에서 외세의 영향으로 수입산 자기를 사용하면서 분원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도자 역사에도 조선의 맥을 끊으려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의도가 스며들어 왜사기기 널리 확산되면서 찬란했던 조선백자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식민사관으로 조선 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였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오히려 서구화와 미국 문화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동경이 따랐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미국에서 구호품으로 스테인레스가 들어왔고 곧이어 양은 냄비가 범람 했으며 플라스틱 그릇들이 우리 도자기의 자리를 차지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20세기에 겪은 정치적 혼란으로 문화의 정체성을 잃어갔습니다,

 

우리 도자기에 대한 인식이 다시금 고개를든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자기 산업은 1965년 이후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일원의 이천과 여주에서 주로 일본의 수요를 겨냥한 청자와 백자를 제작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생활에 사용되는 생활용품들에서 도자기가 사라지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이제 뚝배기 정도가 일반 가정의 식탁에 남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 도자기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도자기가 문화이고 역사이며 생활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의 식탁에 올라오는 그릇은 어떤 것인지요? 천편일률적인 그릇 대신 우리 도자기로 생활의 멋을 부려볼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배운 천여 년의 우리 도자 문화를 마음속에 떠올리면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와 같은 우리의 수준 높은 도자기에 대한 자긍심이 생겨날 것입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우리 도자기를 아껴주지 않는다면 우리 도자의 찬란하고 오랜 문화와는 멀어질 것입니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고 난 조선은 한층 성숙된 사회 인식을 바탕으로 기존의 혼란을 접고 우리 문화에 대해 성찰하고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도자기는 아직도 청체성이나 정통성과는 거리가 있는 일본이나 서구의 것들과 닮았습니다,

이는 자기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부정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최근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는 노력이 활발해지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 여겨집니다,

이런 노력 들이 21세기 한국의 문화를 새롭게 재창조하는 견인차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끝--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