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묵서제진언
대방광불화엄경권28
오대진언
묘법연화경권1
묘법연화경권7
묘법연화경표지, 변상도 및 권1
묘법연화경권6
묘법연화경권3
묘법연화경권6 및 권7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 권상이지삼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권상
육경합부
명주적삼
생명주적삼
무공수정주
합리
후령원통
정현조 의숙공주 발원문
문수동자상 등 중수 발원문
백지묵서 제진언
백색수정 보병
육경합부
황초폭자
천수경 필사본
묘법연화경 변상도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 보물793호
소 재 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동산리 17-5) 월정사 성보박물관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 있는 목조문수동자상(木彫文殊童子像, 국보 221호)에서 1984년 7월 불상의 유래를 밝힐 수 있는 2개의 발원문(發願文)과 조선 전기의 복식, 전적류 등 23점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발원문(發願文)은 불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만든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으며 후대에 보수한 기록도 적어 놓고 있다. 첫번째 발원문은 세조 12년(1466)에 세조의 둘째 딸인 의숙공주(懿淑公主)와 남편 정현조(鄭顯祖)가 세조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오대산 문수사(文殊寺)에 여러 불·보살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의숙공주발원문(懿淑公主發願文)이다 . 크기는 세로 31.5㎝, 가로 24㎝의 낱장으로 되었고, 푸른 비단에 붉은색으로 글씨를 썼다. 또다른 발원문은 1599년에 2구의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과 16구의 나한상 등에 금칠을 새로 하고 고쳤다는 내용을 담고있는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 등 중수발원문(重修發願文)이다. 크기는 세로 34.6㎝, 가로29.1㎝의 낱장으로 되었고 역시 푸른 비단에 붉은색으로 글씨로 썼다. 전적류는 모두 13종으로 백지묵서제진언(白紙墨書諸眞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오대진언(五大眞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5종,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2종, 육경합부(六經合部) 3종이 발견되었다. 백지묵서제진언(白紙墨書諸眞言)은 불교의 가르침 66가지를 범어로 옮겨 적은 것으로, 두루마리 형태이며 크기는 세로 41.8㎝, 가로 679.3㎝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60권 가운데 권28에 해당하며 간행 시기는 12∼13세기로 추정된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1.6㎝, 가로 12㎝이다. 오대진언(五大眞言)은 다섯가지의 다라니 진언(眞言:부처님의 깨달음을 말한 글)을 범어, 한글, 한자순으로 적고 있다. 성종비인 인수대비(仁粹大妃)의 명으로 당나라에서 원본을 구하여 한글로 음역하고, 성종 16년(1485)에 간행한 것이다.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닥종이에 찍어낸 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27㎝, 가로 16㎝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1~3, 4~7은 2권의 책으로 되었고, 크기는 세로 26.9㎝, 가로 16.8㎝이다. 작은 글자로 아주 정교하게 새겨 고려 정종 1년(1399)에 간행한 것으로 해린(海隣)이 1년에 걸쳐 새긴 것이며 인쇄 상태로 볼 때 판을 새기고 한참 후에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1~7은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며 모두 103장으로 되어 있는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24.1㎝, 가로 8.5㎝이다. 태종 4년(1404)에 간행된 목판본으로 표지는 검푸른 색이고 제목은 금색으로 쓰여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6~7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1권의 책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35㎝, 가로 25㎝이다. 세조 때 간행된 을해자본으로 인쇄직후 불상에 넣은 듯 매우 깨끗이 보관되어 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1~3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1권의 책으로 되어있고 크기는 세로 27.6㎝, 가로 16.6㎝이다. 불상에 넣기 전에 읽으면서 달아놓은 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용중에 복장유물로 넣은 것으로 보인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은 세조 11년(1465)에 간행된 목판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27.7㎝, 가로 18.5㎝이다. 세조가 1465년에 원각사(圓覺寺)를 세우고 난 뒤 효령대군(孝寧大君)에게 명하여 교정한 원각경(圓覺經)을 정란종(鄭蘭宗)이 쓴 것으로 을유자(乙酉字)로 찍은 것이다. 을유자본은 을유년에 만든 활자로 찍은 책을 말하며 그해의 간지를 따서 을유자라고 부르며, 이 책은 현재 전하는 을유자본 가운데 가장 깨끗한 책이다. 또다른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은 권상·중·하 3권이 세로 25.1㎝, 가로 16.5㎝의 하나의 책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전에 강희안(姜希顔)이 옮겨 적고 간행했던 간경도감판본을 명종 19년(1564)에 신흥사(臣興寺)에서 다시 새겨 찍어낸 것으로 그 새김이 매우 정교하다. 세로 29.3㎝, 가로 17.3㎝ 크기의 육경합부(六經合部)는 1440년에 영제암(永濟庵)에서 판각한 목판을 인수대비(仁粹大妃)가 성종 3년(1472)에 대대적으로 찍어낸 것 가운데 하나이다. 화암사(華巖寺)에서 성종 19년(1488)에 다시 새긴 다른 육경합부(六經合部)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크기는 세로 26.6㎝, 가로 15.7㎝이다. 진안(鎭安) 중대사(中臺寺)에서 세조∼명종년간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또다른 육경합부(六經合部)는 크기가 세로 26.4㎝, 가로 16.3㎝인데 상원사(上院寺) 복장유물(腹藏遺物)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지 않다. 당시 상류계층에서 입었을 것으로 보이는 명주 적삼 1점과 생명주 적삼 1점은 불상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 공덕을 쌓기 위해 다른 유물들과 같이 넣은 것으로 보인다. 황색 보자기는 불상에 들어갈 유물들을 싸는데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백색수정보병(白色水晶寶甁) 1점, 무공수정주(無孔水晶珠) 1점, 사리(舍利) 3점, 화수(火殊) 1점, 후령원통(喉鈴圓筒) 1점 등이 발견되었다.
※명칭변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 →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