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성게의 화엄세계와 데카의 세계 [九世十世互相卽] 과거 현재 미래를 3世라고 하면 과거의 과거완료 현재완료 미래완료 3世 현재의 과거 현재 미래 3世 미래의 과거 현재 미래 3世 씩 9世가 된다. 이 시간은 유유히 흐르며 변하는 시간이며 우리가 사는 시간이다. 우리는 1에서 9의 시간 속에 갖혀서 산다. 그런데 변하는 相인 9의 시간이 흐르는 밑에 변하지도 흐르지도 않는 영원한 열번째 시간이 있다. 이 열번째 시간이 법성게에서의 10世며 영원한 '늘 지금'시간인 데카 시간이다. 법성게 에서 10世가 '호상즉(互相卽)'이라 했으니 데카시간은 영원한 현재 '즉'(卽)이다. 데카시간 10世는 과거의 과거로 부터 미래의 미래까지 현재를 관통하는 영원성 '늘 지금'이다. 변하지 않는 '바탈'의 시간이다. 9를 뛰어 넘고 건너고 열고 깨고 가야 할 공간으로 본다면 데카공간은 영원한 생명의 현존이다. 그런 1에서 9를 시간 위에 펼치면 10은 영원한 현재인 '늘 지금' '바탈'의 시간이다. 의상대사의 법성게에서는 현상인 9世에 일념(一念)을 더하여 본질인 10世가 된다고 하였다. 그 一念이 현상으로서의 순간[事念]인 즉(卽)이며 영원한 현재에 깨어 있는 현재의식이다. 한 생각 속에 9世가 있고 한 생각을 놓을 때 10世에 머물게 된다고 말한다. 공간적으로 영원한 생명의 현존 '여기'에서 시간적으로 영원한 현재에 깨어 있어서 ' 늘 지금'에 머무는 것이 진정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데카의 삶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본다. 의상대사는 데카(10世)를 원융무애(圓融無碍)한 화엄세계라고 했다. 화엄은 마치 한 여인이 거울 앞에서 화장할 때 거울속의 여인이 진짜여인이 아니고 거울일 뿐이지만 거울과 비친 형상을 나눌 수 없이 하나 되어 원융(圓融)이라 하며 여인은 거울 속과 밖을 거침 없이 드나들며 화장함으로 거침이 없다는 무애(無碍)를 말한다. 본질인 거울에 비친 현상으로서의 형상은 거울과 분리 될 수 없이 하나인 다즉일(多卽一)이고 하나인 것 같으나 둘인 일즉다(一卽多)이듯 九世와 十世 또한 일념(一念)에 비친 九世이기 때문에 十世를 화엄이라 한다. 즉 일념(一念)이라는 거울에 비친 9세가 일념과 함께 10世가 된다. 데카 또한 9까지가 현상세계라면 데카의 세계가 본질이므로 데카 역시 화엄세계다. 본질을 잃은 현상세계는 거울이 깨지면 비치던 상이 산산이 부서져 사라진다. 하나님의 임재가 본질인 예루살렘 성전이 외식과 부패로 독사의 자식들이 된 종교지도자 들로 인해 본질을 잃고 강도의 굴혈이 되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허무하게 무너졌다. 오늘 날 코로나시대를 겪으며 이 나라의 교회는 과연 테바로서의 교회의 본질을 잃지 않고 있는가? 잃었다면 부서져 가라앉을 것이다. 이미 데카로 나아가 성전이 된 우리 또한 우리의 본질을 자각하여 깨어 머물지 못하면 허무하게 무너지고 그 위에 가증한 것이 설 수 밖에 없다. 이미 시공간을 넘어 데카의 세계에 사는 진달래 식구들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현재에 깨어 아버지께서 함께 머무는 온전한 성전이기를 소원합니다. 2021. 1.31 평화 황호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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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
21.02.01 17:59
첫댓글 장로님의 해박한 지식과 가감 없는 말씀으로 은혜 충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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