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을 읽는 이에게
| 벽암록을 읽는 이에게 원오극근(圜悟克勤)선사가 머물며 벽암록을 강설한 협산의 영천원은 협산 선회선사(夾山善會禪師)가 창건하여 초대 방장으로 주석했던 곳이다. 선사가 영천원에 머물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찾아와 문답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 협산의 경치입니까?” “원숭이는 새끼를 품은 채 푸른 산봉우리로 돌아가고(猿抱子歸靑嶂裏), 새는 꽃을 물어다 이끼 낀 푸른 바위 앞에 떨어뜨린다(鳥啣花落碧巖前).” ‘벽암(碧巖)’은 이 문답에서 유래했고 영천원에 걸려 있던 편액(扁額)이었다. 그래서 원오극근의 후학들이 그의 강의록을 모아 책을 편찬할 때 그가 머물던 영천원의 편액을 책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여기서 벽(碧)은 참구할 화두(話頭)요 암(巖)은 의정(疑情)이다. 벽암록은 설두 중현(雪竇重顯)선사가 <경덕전등록>의 1700고칙(古則)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100가지를 가려내고, 여기에 송고(頌古)를 더해 쓴 설두송고(雪竇頌古)가 모체가 되었다. 송대(宋代)의 원오 극근(圜悟克勤)선사는 설두 중현선사의 송고백칙에 다시 수시(垂示)·착어(着語)·평창(評唱)을 붙여서 가르쳤는데 그 때 가르침을 받은 후학들이 강의록을 모아 편찬한 것이 벽암록이다. 벽암록은 공안에 대한 후인들의 염 · 송 등의 착어를 모은 공안집(公案集)이다. 간화선(看話禪)을 확립한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는 간화선에 대해 지인들과 주고 받은 서신인 서장(書狀)으로 많이 알려졌다. 서장은 강원의 2년차 사집 과목 중 하나로 교학에서도 중요시하여 익힌다. 그가 확립한 간화선은 화두(話頭)를 결택한 후 지속적인 '의심'을 통해 '의단(疑團)'을 형성하여 결국 무명(無明)을 타파하고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요체인데 벽암록은 오히려 이를 방해하고 있었다. 대혜선사가 볼 때 수행승들이 입실(入室)하여 자신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 매우 뛰어나므로 자못 의심스러웠다. 조금 따져 물으니 수행승의 비뚤어진 날카로운 기세는 저절로 꺾이고, 다시 한 번 족치니 순순히 굴복하여 자백하기를 ‘저는 벽암록의 내용을 외운 것이지 실제로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대혜 선사는 후학들이 근본을 잘 모르면서 말만을 숭상하여 입만 나불거리는 자가 되는 것을 우려해서 ‘벽암록’을 불태워 버려 그 폐해를 막으려 했다. 스승인 원오극근이 간화선 수행의 근본 가르침으로 내려준 벽암록을 모아 태워 없애고 찍어낼 판본마저 불태운 일은 대혜종고 선사가 간화선을 어떻게 수행해야 되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참선을 통해 진리의 직접 체험을 생명으로 삼는 간화선(看話禪)이 입만 나불거리는 구두선(口頭禪)으로 전락하는 것을 본 대혜 선사는 간화선의 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이후 소각 후 약 150여 년이 지난 원나라 초기에 거사 장명원이 <벽암록>을 복간했는데 그 복간본이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복간된 ‘벽암록’의 서문에서 삼교노인도 선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있다. “이 책이 세상에 다시 유포되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깊다. 그러나 만약 물을 보고 바다인 줄 알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로 착각한다면, 이는 대혜 선사가 걱정하는 바일 뿐 아니라 원오 선사도 이런 속박을 끊으려 할 것이다. 옛사람이 그린 초상화에 붙여진 찬시에, ‘분명하구나, 종이 위에 그려진 장공자(張公子)여! 온 힘을 다해 큰 소리로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네’라고 씌어 있다. 이 책을 간파하려면 먼저 이 말의 의미를 잘 살펴라.” 살아 있는 장공자를 만나라! 선을 하려는 자 화두를 들고 확연히 깨칠 때 까지 의정에 몰입해라! 벽암록을 보려거든 서장도 함께 보라! 괞히 벽암록으로 지해(知解)하여 깨달은 듯 흉내 내어 혀를 나불거리다 그 혀가 불탈 것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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