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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

임제 할(喝)!!!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5|조회수0 목록 댓글 0

임제 할(喝)!!!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당나라 시대의 선승이자 임제종의 창시자인 임제의현(臨濟義玄) 선사는 수행자들의 깨달음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 크고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고는 했는데 이를 할(喝)이라 한다. 할 말고도 임제선사의 어록 중에 보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 말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보통 "곳에 따라 주인이 되면 서는 곳이 모두 진리가 되리라”고 해석을 한다. 그러나 나로서는 임제선사가 이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주인이 되면 서있는 자리가 왜 진리가 되는지 도대체 설명이 안된다. 그래서 唯識的 측면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수처(隨處)의 處가 내가 처한 장소를 의미할까? 불전에서 處로 한역하는 말은 주로 아야따나(處, āyatana)다. 아야따나(處, āyatana)는 감각대상인 육경(六境)과 감각기능인 육근(六根)이 상호 의지하여 분별식(識)과 상(相)을 형성하는 뇌 안의 가상공간이다. 그 가상공간을 일체라고 표현하는 십이입처(十二入處, dvādas āyatanāni)의 處가 대표적인 아야따나의 역어다.
그렇다면 처(處)가 몸 밖의 서 있는 장소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또한 수(隨)를 한전(漢典)에서 찾아보면 본래 뜻은 근종(跟從)으로 졸래졸래 '따라간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隨處는 ' 어디를 가던 그곳'이 아니라 '입처(入處, 아야따나)를 따라가 보면'이라고 해석해야 된다고 본다.
다음은 작주(作主)다. 作主가 꼭 주인이 되라는 말일까?작주를 '주인이 되라'고 피상적인 해석으로 오독하면 자기중심적 행위가 정당화 되고, 규범을 벗어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여 무법·무기준이 합리화 되며, '내가 주인이다’는 자아(我)를 실체화 하여 분별심과 아만심을 강화시켜 無我와 空性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불경 어디에도 아치(我癡),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등의 아집에 물든 자아를 주인으로 세우라는 가르침은 없다. 붓다가 주인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은 것을 임제선사가 가르칠리 없다.
수처작주와 짝을 이루어 많이 거론되는 말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이다. 살불살조가 주인이 되라는 말인지 다시 살펴볼 일이다. 수처작주와 살불살조를 오독하면 공부를 망친다.
살불살조라는 말은 주인이 되라는 말 보다 깔라마 숫따(Kalama Sutta)의 가르침인 다음과 같은 경문에 더 가까울 것이다.
“듣기만 한 것으로, 반복된 전승으로, 전통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로, 경전으로, 논리적 유추나 가정으로, 그럴 듯한 논리로, 깊이 곰곰이 생각해 낸 자기 사유로, 남의 겉모습이나 권위로, 또는 ‘이 스승이 우리 스승이다’라는 생각만으로 그런 것으로 이 가르침(dhamma)을 무턱대고 믿지 말라. 그러나 너희 스스로 보고, 실천해 보고, 알아차려 보고, 그 dhamma가 ‘바람직하며, 덕 있고, 바른 것이며, 많은 중생의 행복과 이익에 닿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때 그 가르침을 받아들여 실천하라.” 가르침을 받아드릴 때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검증하라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오독하여 스스로도 영적 교만이 가득차 주인 노릇하고 주인이 되라고 부추겨 구렁텅이에 처박히고 있는가?
唯識의 입장에서 보면 作主는 육경(六境)과 육근(六根)이 入處에서 서로 의지하여 상(相 산냐)과 분별을 주인으로 만드는 제7 말나식의 작용을 뜻한다. 이제 수처작주를 ' 입처를 차근차근 따라가 보면 그곳에서 상(相 산냐)과 분별을 주인으로 만드는 작용을한다' 라고 해석야 되지 않을까? 이 해석에 따르면 입처개진(立處皆眞)은 '그곳에서 만들어진 분별과 상(相)들이 모두 참인 것처럼 그곳에 성립한다'로 해석되어 '서 있는 그곳이 진리가 된다'는 해석이 오독인 것으로 확연히 드러낸다.
이상으로 보면 '수처작주 입처개진'은 '處를 따라가 보면 그 곳에서 상과 분별을 주인처럼 만드는 작용이 일어나 마치 그것들이 참인 것처럼 서 있으니 이런 작용에 속지말라'는 임제선사의 가르침이라고 본다.
이제 더 이상 분별과 상이 주인 노릇하는 놈이 참인 것처럼 착각하는 꿈에서 깨어 실상을 여실히 보라는 것이다. 모든 분별과 상들은 자성이 없어 조건따라 형성 된 것이니 더이상 주인 노릇하는 그 놈들에게 끄달리지 말고 그 놈들이 참인 것처럼 설 자리를 허물라는 것이다.
이제 파사현정(破邪顯正)하고 무엇이 주인 노릇하고 있는지 입처를 곰곰이 들여다 볼 일이다. 임제선사가 외치는 할(喝)속에 이 모든 가르침이 들어 있다. 차라리 오독할 바에는 감추어진 하나님이 진리로 나타난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서 예수 위에 서면 서있는 그곳이 모두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는 진리가 되리라.
쓸데 없이 주인 노릇하며 내가 선 자리가 진리라고 똥폼 잡지 말고 下心으로 그 꿈에서 깨어 알아차리고, 空性의 지혜로 밝게 비추어 緣起實相을 바로 보아 주인이니 진리니 그딴 것에 탐착하는 고통에서 벗어나 좀 평안해지면 어떨까?
할!!!
가을 끝자락 11월 마지막 날 단상을 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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