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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

낀 존재 인간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0 목록 댓글 0

낀 존재 인간

인간은 관계에 있어서 양 극단의 사이에 낀 존재다. 공간적으로 상하 좌우 사방에 끼어 있다. 어디에 서 있어도 이 낀 상태는 변하지 않는다. 시간적으로 과거와 미래 사이에 끼어 있다. 카이로스라는 하늘의 때와 크로노스라는 땅의 때 사이에 끼어 있다. 가치 측면에서 보더라도 진과 위, 선과 악, 미와 추의 사이에 끼어 있다. 존재의 측면에서도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끼어 있다. 낀 존재는 어느 한 극단의 힘에 끌려 가거나 양 극단의 압력으로 인해 늘 긴장과 갈등 그리고 불안 속에 있으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집착하는 성향으로 인해 늘 불만족 상태의 고통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낀 상황을 만드는 현상은 양 극단이 서로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음으로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하는 연기적(緣起的)관계에 있어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이 양 극단을 버려 불이(不二)로 낀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을 중도(中道)라고 한다. 서울이 인천 사람은 동쪽에 있다 하고 강릉 사람은 서쪽에 있다고 서로 우긴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양쪽 모두 서울 쪽인 것을... 이미 지나간 과거에 사로잡혀 못다 이룬 것들에 대한 회한과 입은 상처로 고통 받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집착해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과 어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준비한다고 모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 뿐인데... 깨어 지금 여기에 머물러 누리는 것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중도의 길을 가기 시작하는 첫 걸음이다. 낀 상태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지금 여기에서 하늘의 때와 하늘의 뜻을 알아채고 이루어 간다면 지금 여기가 영원한 천국이 아니겠는가?
현생인류의 긴 역사에서 볼 때 인간은 늘 하늘과 땅 사이에 끼어 있었다. 어떤 때는 짐승처럼 땅을 향할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하늘씨앗으로 하늘을 향할 때도 있었다. 돼지는 죽을 때 딱 한번 하늘을 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한 평생도 마찬가지다. 땅의 힘에 끌려 평생 땅만 보고 땅의 일을 하며 살다 다 늦게 관속에 누워서야 하늘을 본다면 하늘 씨앗으로 또 얼마나 한스러울까. 한편 통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 처럼 늘 구름위에 살다 지 손으로 땅 한평 못 일구고 새끼를 품에 안아보지 못하고 죽어서야 땅에 묻힌다면 하늘 씨앗의 숙제를 다 못한 한스러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이 땅에 살면서 발은 땅을 굳게 딛고 머리는 하늘을 향하는 것이 하늘과 땅사이에 끼어 고통 당하지 않고 위와 아래를 좌와 우를 나로 하나 되게하여 하늘씨앗이 주인으로 수처작주(隨處作主)하는 본분이 아니겠는가?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모든 이원적인 양극단들을 십자가의 중심에 하나로 만들고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오늘 하루도 십자가의 중심에 서서 깨어 순간 순간 소중하게 붙잡고 집중해서 하늘 숙제를 해 보자!

 

댓글

씨알

22.03.30 07:18

첫댓글 "지금 여기에서 하늘의 때와 하늘의 뜻을 알아채고 이루어 간다면 지금 여기가 영원한 천국이 아니겠는가?"
지금 여기가 천국임을 생각해봅니다.
내가 눈뜨고 바라보고 있는 여기

 인향

22.06.08 15:09

저기도 거기도 아닌, 여기
어제도 내일도 아닌, 지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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