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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

경허선사의 무비공(無鼻孔)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3 목록 댓글 0

경허선사의 무비공(無鼻孔)

 

2022년 7월 17일 주일 점심

무외 황호건 장로님으로부터 경헌선사의 무비공 無鼻孔을 듣는다.

숨님의 시 여물에 대한 문답이다.

걱정없이 여물을 먹는 소

셀 수 없이 많은 날 번뇌와 걱정을 여물처럼 먹는 사람들

 

소는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사람과 친숙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코뚜레를 하게되면 그 순간 

자기를  잃고 종속이 된다.

 

마찬가지로 경허 역시 동자승으로부터 무비공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덫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경허는 덫이 놓이는 그 순간 뜻밖에도 덫에 얽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났다.

꽉 막힌 의구심을 일거에 날려 버리고 온 몸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증발해버리는 경지다.

그것은 화두에 집중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매달리지도 않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풀려남이다.

그러므로 경허는 느낌으로만 터득할 뿐 그것을 말로 풀어낼 수가 없다.

말은 또 다른 감옥이기 때문이다. 말을 옮기는 문자는 더 지독한 족쇄가 된다.

그리하여 납득하지 못하는 어떤 이들은 이런 경지를 괴벽이라고 무참히 공박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경지에 이르러 오도송을 남긴 경허는 또 다른 화두에 갇힌 꼴이다.

물음표로 끝난 오도송의 연민에서부터 경허는 이미 평생 의발을 전수할 제자를 아쉬워한다.

마침내 스승을 찾아 헤매던 만공과 혜월이 무덤에서 꺼내 경허를 다비한다.

화두와 격식과 전례와 존경과 연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이없는 쳇바퀴들이다.

어찌 천하만물과 우주섭리를 단 한 번의 깨달음으로 일이관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돈오돈수(頓悟頓修)고 또 돈오점수(頓悟漸修)라고 하지 않았던가!

경허는 경허의 세계가 있고 만공은 만공의 흔적이 넓고 혜월은 혜월의 달빛이 있다.

우리는 모두 제 나름대로의 깨달음과 제 각각의 성심이 있고 제 각각이 다 부처다.

그런데 앞서 간 이들의 흔적과 인연을 더듬어 숭모하고 아류를 자처함은

나의 부처인가?

나는 문득 경허와 만공과 혜월과 화두를 밀어 놓는다.

그렇다면 무비공(無鼻孔)을 모르고도 잘 살아가는 이들은 뭔가? 그들은 그저 중생들인가?

그렇다. 그들도 그들대로의 닥치는 것들을 감당해 나가는 無間大衆 부처들이다.

승속이 다르지 않고 부처도 화두도 도처에 있다. 누구나 제만큼의 깨달음으로 살고 죽는다.

다만 살부살조(殺佛殺祖)할 따름이라. 한두 번 살부살조로 끝나는 세상도 아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가벼이 흐르는 구름처럼 스스럼이 없음이다.

해탈의 경지를 설하는 중에 말이 막힌 부처님이 가만히 웃으면서 연꽃을 하나 들어 보였다.

불립문자요 교외별전이다.

마하가섭만 그 뜻을 알고 빙긋 웃었다고 한다.

염화시중이다.

장로님이 건네준 무비공無鼻孔

무비공이 한주를 살게되는 큼 힘이된다.

 

202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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