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제16장, [能淨業障分] 解
이해를 돕기위해 해석을 바로 잡는다. 「善男者와 善女人이 이경을 受持讀誦하는데도 경시 당하고 천대 받는 것은 응당 악도에 떨어질 만한 先世의 罪業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금세의 사람들로 부터 천대 받는 데도 불구하고 이 경을 수지 독송 하면 그 죄업이 씻어져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이 經句는 수행자나 道를 행하는 자들이 받는 애매한 핍박과 고난에 대한 緣起的 해석과 그 緣起의 因果를 業으로 규정한다. 信行이 바르고 利他하여 복락을 누릴만 한데 왜 애매한 핍박과 고난을 겪는가? 이 경우 애매한 것이 아니라 과거 마땅히 惡道에 떨어질만한 神•口•意로 지은 罪業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여 住•修•斷하고 相을 여의면 과거의 罪業이 씻길뿐 아니라 짓지 않게 되어 業이 業을 낳는 악순환의 緣起 고리와 족쇄를 끊고 열반 해탈의 대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빛나는 발광체는 자신의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금강경을 삶으로 실천하는 지혜로운 대승보살,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경외하는 하늘의 아들들은 스스로 빛을 발하여 세상을 밝히는 발광체다. 緣起 實相 속에 因으로 작용하는 神•口•意 業 또한 無自性하여 空한 것이기에 조건에 따라 生하고 滅하기 때문에 늘 業을 짓고 사는 우리도 희망이 있다. 만약 그 業이 自性이 있어 조건이 사라져도 그대로 있다면 삶은 業에 의해 결정된 숙명으로 자유의지가 사라진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緣起는 극복해야할 과제이면서 동시에 건너가게 하는 지혜 방편이다. 대승보살의 삶은 당시에 종교 사회 정치적으로 기존 종교세력과 대립하는 혁명이었기에 핍박과 고난이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을 2500여년의 불교역사가 말해 주고있다. 특히 인도 티벳 중국 조선에서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대승불교 탄압은 극심했다. 기독교에서도 해석은 다를지라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믿음의 선진들이 당한 순교의 피로 2000년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고난이 올 지라도 믿음으로 인내하며 여여하게 말씀 따라 순종할 때 하나님나라 극락정토의 삶을 누릴 수 있다. |
댓글
씨알
23.01.16 13:43
첫댓글 "緣起는 극복해야할 과제이면서 동시에 건너가게 하는 지혜 방편이다."
말씀 속에서 能淨의 의미를 살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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