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제17장 究景無我分 (解)
究景無我分을 了達하기 위해서는 佛說이 眞諦와 俗諦로 구분 되고 眞諦는 眞空 해탈 열반의 세계며 俗諦는 소박한 범부의 假有의 緣起 世間임을 먼저 알아 眞諦를 말하는 것인지 俗諦를 말하는 것인지 眞諦를 드러내기 위해 방편으로 俗諦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된다. 이 관계를 금강경의 각 장에서 반복하고 있다. 無我는 안아트만으로 五蘊이 自性이 없는 我空의 眞諦다. 여기서 無我인데 무엇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보살행을 행하는가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를 설명한 것이 假立 假有의 俗諦다. 우리가 소박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世間인 俗諦는 自性이 없어 因과 緣이 서로 의지하여 조건 따라 生•住•滅하는 허망한 假有의 세계이면서 모든 사태가 발생하는(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場이다. 「나는 반드시 일체 중생들을 다 제도하노라. 그리고 일체 중생들을 다 제도하였으나 한 중생도 실은 제도한 것이 없노라.’라고 해라.」는 相이 없이 행하는 함이 없는 함이며 眞諦를 俗諦에서 행하는 眞空妙有인 것이다. 보살이 眞諦에 住하며 俗諦에서 行함이니 眞俗不二이다. 원효대사가 득도 후 저자거리로 나온 행적과 경허선사가 산수갑산으로 간 이유다. 眞諦는 言語道斷 心行處滅의 자리이기 때문에 붓다께서 拈花示衆했을 때 가섭존자 홀로 미소를 지어 답한 것이다. 다석 선생께서 神을 「없이 계신」이라고 칭한 것이 곧 眞空妙有의 眞俗不二의 자리인 것이다.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시며 갈릴리 민중들과 함께하신 것이 俗諦라면 말씀이신 예수께서 眞諦인 것이다. 예수를 증거하는 일은 俗諦로서 眞諦를 드러내는 일이다. 내 안에서 그리고 이 땅에서 相을 여의고 無分別의 智慧로 하나님나라를 이루고 사랑으로 살아 내는 길이 眞俗不二 금강보살의 길이다. |
댓글
씨알
23.01.20 18:39
첫댓글 "이 땅에서 相을 여의고 無分別의 智慧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사랑으로 살아 내는 길"
상을 여의고 분별없는 지혜를 터득하여
나 없이 나로 사는 眞諦의 길을 배웁니다.
귀한 말숨으로 설날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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