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붓다(佛陀)] 마1:18~25를 상고하며 붓다는 깨달음을 얻어 해탈열반에 이른 분을 일컫는다. 예수붓다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붓다로 태어난 것을 말한다. 고타마붓다는 19세에 출가하여 6년 수행 후 25세에 붓다가 되었지만 예수님은 태어나면서 붓다로 태어나셨다. 세존의 고행 후 붓다가 된 깨달음은 緣起法 이었다. 인간의 한계상황인 모든 고통은 연기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으로 부터 비롯되어 생사(生死)에 이르는 十二緣起가 끊임 없이 반복 되기 때문이며 고통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은 이 緣起의 사슬을 끊어 解脫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2연기설(十二緣起說)은 무명 · 행 · 식 · 명색 · 6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사의 12지, 즉 12요소로 된 연기설(緣起說)이다. 연기법 특히 유전연기(流轉緣起)의 정의 즉 법(法)은 연(緣)과 기(起)를 뜻하는데, '연(緣)'이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此有故彼有]는 것을 의미하고, '기(起)'란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此起故彼起]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연(緣)'은 무명연행(無明緣行) · 행연식(行緣識) · 식연명색(識緣名色) · 명색연6입(名色緣六入) · 6입연촉(六入緣觸) · 촉연수(觸緣受) · 수연애(受緣愛) · 애연취(愛緣取) · 취연유(取緣有) · 유연생(有緣生) · 생연노사(生緣老死)의 일련의 인과관계적 과정을 말하고, '기(起)'는 이 과정을 통해 추(愁: 걱정) · 탄(歎: 한탄) · 고(苦: 괴로움) · 우(憂: 근심) · 뇌(惱: 번뇌, 고요하지 못함)가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뜻의 '연(緣)'과 '기(起)'를 총체적으로 간략히 말하면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 또는 순수하게 큰 괴로움의 무더기 즉 5취온(五取蘊)이 형성[集]되는 것을 말한다. 5취온이 형성된다는 것은 끊임 없이 고통이 반복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무명(無明)으로 부터 유(有)에 이르는 연기에 의해 태어나고(生) 노사(老死)에 이르는 고통이 계속 된다. 여기서 태어남은 직전의 유(有)에 緣한 것인데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유(有)는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의 3유(三有)를 뜻한다. 그리고 有에 緣하여 태어나는 것은 각각의 유정(有情)이 각각의 유정의 종류로 갖가지 생에서 6취[趣] 가운데 태어나서는 온(蘊)을 일으켜 나타내고, 계(界)를 득하고, 처(處)를 득하고, 모든 온(蘊)을 득하고, 명근(命根)이 생겨 고통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有를 緣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 났다.(마1:18)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의 三有에 의한 잉태가 아닌 성령으로 잉태함으로 12연기의 고리를 끊고 해탈한 상태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마1:1~17까지의 52대에 이르는 緣起의 고통(罪)의 시대를 끝내고 얼나의 평화와 행복의 시대가 시작됨을 뜻한다. 역사적 기록인 기표와 기의가 사실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예수님의 성령 잉태와 마리아를 통한 탄생이라는 기표(성경기록)를 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뿐 사실로 증명할 방법은 없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나 나는그 의미로 볼 때 예수님의 태어남은 고통(罪)의 근원인 緣起의 고리를 끊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 났기 때문에 예수붓다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고타마 붓다처럼 수행으로 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붓다 안에 있는 우리는 평화롭고 행복한가? 할 렐루야 🙏 |
댓글1추천해요2
댓글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