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제20장 離色離相分(解)
| 불신관(佛身觀)을 논할 때 보통 초기의 色身과 法身이라는 이신설(二身說)에서 각 종파 마다 다른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의 삼신설(三身說)로 전개되었다고 본다. 경전에 나온 대로 부처의 色身은 32相 80種好를 갖추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五蘊으로 이뤄진 色身이 三十二相 八十種好를 具足했다고 해도 緣起的 조건에 따라 生•住•滅함으로 空하다. 따라서 "具足色身이 곧 具足色身이 아니고 그 이름이 具足色身입니다"라고 답한 것이다. 붓다께서는 겉 모습으로 나타나는 相을 보고 취하여 佛로 보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제자들이 주목해할 대상은 겉모습인 色身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의 본체인 法身( 다르마카야, Dharmakāya)임을 말한다. 離色離相을 증득하려면 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滅盡定)의 禪定을 닦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正見을 얻어 寂靜 가운데 木佛을 보든 生佛을 보든 응무소주 이생기심 하는 것이다. 육조대사는 色身의 相에 잡혀 眞身으로 미혹 될까하여 三十二相은 色身이 具足함이 아니고 三十二 淸靜行을 닦으라 하는 것이요 곧 六波羅蜜 修行이라 하였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 뭇 사람들은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고 목수의 아들 나사렛 출신이라고 업신여겼다. 자색 옷을 입혀 채찍질 하고 십자가에 매달고는 유대의 왕이라 조롱했다. 메시야라고 고백한 베드로 조차 정치적 메시야로 여겼다. 겉사람의 相에 붙들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생명의 빛이 되신 참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금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자신의 욕망이 투사된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여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相을 여의고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을 바라보고 광야에서 온전히 비우신 주님, 긍휼과 사랑으로 치유하시는 생명의 주님, 말씀이신 주님을 바라보자. 겉사람의 相을 여의고 속사람을 보는 눈이 떠 지기를🙏🙏🙏 |
댓글
씨알
23.01.26 22:14
첫댓글 부처님께서 멀리하신 상을 그리스도 역시 상을 여의고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생각해 보는 금강경 20장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해석해 주신 장노님의 법력이 장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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