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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

금강경 제23장 淨心行善分(解)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1 목록 댓글 0

금강경 제23장 淨心行善分(解)

 

예수께서 불합리한 차별적 유대전통을 개혁했듯이 붓다는 오랜 인도의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계급적 차별을 평등으로 개혁했다.
인도는 힌두교 전통으로 바르나(Varna, 색깔)와 자티(Jati, 출생)에 따른 카스트제도인 브라만(Brahman: 사제자)·크샤트리아(Kshatriya: 무사·귀족)·바이샤(Vaisya: 자영농·상인·공인 등의 생산직 중산층), 피정복민(被征服民)으로 이루어진 수드라(Sudra: 육체노동자 및 농노) 그리고 불가촉 천민 이라는 계급에 따른 인종 차별이 있었다. 그러나 붓다는 각 사람의 현재 삶을 규정하는 因과 緣은 조상들의 계급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身口意라는 緣起的 業(카르마)라고 말하며 이런 계급을 원천적으로 부정했다. 이렇게 계급을 부정한 근거는 높고 낮음이 없는 진리인 一體 無自性, 緣起法, 空思想에 기초를 둔 아뇩다라삼보리 이다. 일체 苦를 여의고 무여열반에 드는 것이 붓다 가르침의 큰 흐름이라면 계급에 따른 인종차별로 부터오는 苦 역시 타파해야할 대상인 것이다. 붓다는 타고 나는 신분에는 영원 불변하는 自性 그딴거 없고 緣起의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으며 누구나 苦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중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나 똑같이 緣起實相의 세계에 살면서 그 연기실상을 바로 보고 空性을 깨달으면 붓다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법이 네 계급의 相 뿐만 아니라 일체 相을 여읜 無分別智인 아뇩다라삼보리이다. 수보리에게 이 相을 여의는 住•修•斷으로 平等聖智를 이루어 세상을 이롭게 하고 다른 사람이 싫어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실제의 善法이지 다른 善法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만 이름이 善法일 뿐이라고 말한다. 俗諦에서는 善惡의 분별이 있지만 無分別智인 眞諦에는 善惡의 分別조차 허락되지 않는 평등의 空相이다. 그래서 대승사상을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고 한다. 우리의 의식 뿐 아니라 사회제도 역시 바로 잡는 것이 대승사상이다. 一體 相을 여의는 住•修•斷의 보살행이 나를 바꾸고 사회를 개혁하는 파사현정이다. 예수께서는 유대 전통의 사제계급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 말하며 날 때부터 정해진 각 지파의 신분이나 선민사상을 하나님나라 복음으로 부정해 버렸다.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아버지의 자녀된 권세가 주어지고 하나님나라의 차별 없는 백성이 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주께서는 이 선언대로 갈릴리에서 세리와 창기와 어부와 함께하신 민중의 주님이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천민자본주의가 돈의 소유에 따라 계급을 형성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 환원시키고 평가 받도록 차별을 심화시키는 자본종교의 시대가 되었다. 이 병폐를 치유하고 파사현정하는 길은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상정등의 하나님나라 복음 밖에 없다. 이제 깨어 그리스도 안에서 내 안에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알아차리고 살피며 예수께서 모든 相을 여의고 모든 사람을 하늘 씨앗으로 귀하게 여기고 대했 듯 예수보살이 되어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고 들으며 그리스도의 善法인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를 닦으며 사랑으로 살아가길 기원한다🙏🙏🙏

댓글

 씨알

23.02.06 12:25

첫댓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
정말..이 이치는 브라만제도에 속한 계급을 떠나 만인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법 앞에 법 위에 서서 법을 제맘대로 휘두르는 권력자 역시 이 이치 앞에서는 빗겨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을 상고하며 맑은 마음으로 행하는 선이야말로 세상을 맑게하는 생수와 같은 길임을 깨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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