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제28장 不受不貪分(解)
| 참을 忍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이 있다. 요동치는 마음을 억누르고 참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하고 있다. 참을 忍은 칼날 인(刃) 밑에 마음 심(心)이 있다. 이것은 불쑥불쑥 올라오는 분노와 미움, 능욕과 수치심 등으로 평정을 잃을 때마다 마음에 얹혀진 칼날로 잘라 내라는 뜻이겠다. 그런데 이게 가능할까? 잘라낼 때마다 상처가 나고 상처는 옹이가 되어 한으로 남지 않을까? 붓다도 이 忍의 성취가 인간적인 노력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空性인 無我를 깨닫고 난 후에야 함이 없이 忍을 성취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 보시 하는 것보다 無我를 깨달아 忍을 성취한 福德이 더 크다고 말한다. 無我를 "나"가 없는 것으로 많은 오해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我는 범어로 아트만(Ātman)이라 하고 아트만은 힌두 전통에서 윤회하는 영원 불변의 내안의 '나'를 뜻한다. 붓다는 내안에 영원 불멸하며 윤회하는 나는 없다고 선언한 것이 無我 즉 안-아트만( anātman)이다. 내 안에 영원 불멸하는 '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조건에 의하지 않고 독립되어 고유의 고정불변하는 속성을 가진 自性이 없이 오온(五蘊 :色 ·受 · 想·行•識)이 緣起에 의존해 生하고 滅하여 無常하기 때문에 無我라고 말한다. 이러한 忍의 성취를 無我라서 生함이 없는 법을 알아 忍을 성취한다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고도 한다. 하반절 에서 忍을 성취한 보살이 공덕이 수승한 것은 복덕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고 그 이유는 보살은 이미 無我를 깨달아 무루의 지혜를 지녔으니 法空인 공덕이 어디에 있어 受하고 貪할 것이며 보살이 이미 空한데 受하고 貪할 作者가 사라져 복덕을 받거나 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도 이미 광야 40일간 자기를 비웠고,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9b)" 라고 자기를 온전히 비운 뒤 잡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 까지 온갖 모욕과 능욕과 저주를 참아내신 것이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자기를 부인하여 비운 자만이 참생명의 영혼을 얻는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누가복음21:19). 緣起實相의 無常한 無我를 깨달아 자기를 비운 자만이 텅빈 자리에 얼나로 솟나 함이 없이 인내를 성취하고, 받으려 함도 탐함도 없이 생명의 영혼을 얻는다. |
씨알
23.02.15 13:58
첫댓글 "칠보로 보시 하는 것보다 無我를 깨달아 忍을 성취한 福德이 더 크다. 보살은 자신이 지은 복덕을 반드시 탐하거나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해를 통해서 나를 이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됩니다. 무생법인을 통해서 忍의 가르침을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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