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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

금강경27장 無斷無滅分(解)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1 목록 댓글 0

금강경27장 無斷無滅分(解)

 

인류는 문명 이래로 있다(有)왕과 없다(無)왕에게 사로잡혀 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생각이 너무 확고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럴까?
붓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있다'에 사로 잡힌 사람에게는 '있다'라는 견해가 잘못된 견해임을 밝히고 '없다'라는 견해에 빠진 사람에게는 '없다'라는 견해가 잘못된 견해임을 밝혀 有無의 잘못된 견해에 미혹(迷惑)되어 取着하고 渴愛를 일으켜 결국 苦에 이르도록 하는 미혹을 없애 苦에 이르는 緣起의 첫 고리를 끊어 그 有無 병을 치료한다. 보통 사물이 가지는 自性을 스바바바(svabhāva)라고 하며 '스스로 존재하며, 고정 불변하는 속성'을 말한다. 自性은 緣起性을 파괴한다. 따라서 모든 緣起實相 가운데 있는 사물은 無自性이다. 無自性을 空이라 한다.
空하기 때문에 '있다(有)'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눈앞에 저 나무가 보이고 산이 보이는데 왜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인가? 俗諦에서는 눈에 보여도 그것은 實體가 아닌 가유(假有)일 뿐이라고 말한다. '없다(無)'라고 하는 말도 없는 것은 없기 때문에 인식이 불가능 하니 잘못된 견해라는 것이다. 有無의 이원적 세계관이 삶의 정초를 이루는데 그 터를 허물고 어쩌란 말인가? 이제 답을 찾아야한다. 붓다는 아무런 분별 없이 緣起實相 속에 그대로 있으면 있다고 보고 없으면 없다고
여실지견(如實知見)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中道觀이다. 여기서의 中은 가운데가 아니라 正을 말한다.'있다(有)' 는 常住論에 치우치지도 말고 '없다(無)'는 斷滅論에도 치우치지 말라고 八正道의 첫 수행 주제로 정견(正見)이 있다. 치우침 없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에포케하고 바로 알아차리고 옳바로 보는 정견이 모든 수행의 첫 걸음이다. 26장 法身非相分에서 법신은 相이 아니라 했으니 아하! 相을 끊어내어(斷) 滅해서 相이 없어야(無) 무상정득각을 이룰 수 있다고 오해하는 無記를 깨우쳐 無如涅槃의 寂滅이 眞諦로서 아무것도 없는 斷滅(無)이 아님을 본장에서 說하고 있다. 眞空妙有하지 않고 일체 相이 斷滅이라면 俗諦에서의 보살행을 할 수가 없다.
붓다는 수보리에게 相을 具足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보리심에 이르렀다고 말라 그리고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의 마음을 낸 자는 모든 법이 단절되고 소멸되어 버림을 주장한다고 생각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라. 왜냐면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의 마음을 낸 자는 법에 대하여 단절되고 소멸된다는 관념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다시 言說의 한계에 부딪힌다. 眞諦를 說하는 俗體의 방편설이 그렇다. 그럼에도 緣起實相과 無自性 그리고 空性을 의지하여 보면 모순들이 극복 되고 정견할 수 있다. 성서에도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신명기5:32)"라고 기록하여 좌도 보고 우도 보되 극단적인 한 邊에 치우치지 말고 행하라고 하신다. 바로 中道的인 삶을 살라고 말씀은 하셨으나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次第가 구체적으로 제시 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有無의 한 邊에 치우쳐 고착화 되었기 때문에 常住論(有)과 斷滅論(無)을 벗어나 하나님나라의 섭리를 옳바로 보기 위해서는 正見을 위한 修行이 필요하다. 일상의 삶 속에서 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감정 그리고 생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리고 가만히 지켜 보는 것이다. 다만 알아차리고 에포케하며 지켜본다. 느낌과 감정과 생각이 무엇으로 부터 因하여 어떤 조건(緣)에서 일어나는지(起) 살펴 본다. 이것이 正見의 시작이다. 특별히 시간을 내어 홀로 기도할 때는 생명의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린다. 그때 숨을 조작하지 않고 인중에서 드나듬을 집중해 거칠면 거친대로 미세하면 미세한대로 길면 길다고 짧으면 짧다고 알아차린다. 알아차림이 확립되고 집중이 이루어 지면 들숨과 날숨이 아버지로 부터 어떻게 因하고 어떤 조건(緣)에서 몸과 밖으로 드나 드는지(起) 살펴 본다. 지관(止觀)을 하는 것이다.
상대적인 언어들 , 그리고 삶으로 입증할 수 없는 문제는 희론이라 논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나라의 그리스도 안에서 얼나로 솟나 有無 常住 斷滅에 대한 취착으로 탐진치 삼독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사물의 연기실상을 正見하여 온전히 중도 공의 진리로 살자.

 씨알
23.02.16 10:05
첫댓글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於法에 不說斷滅相이다."
무상무등정각을 얻은 사람은 설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
장로님 말씀대로 중정을 얻으므로 치우침이 없습니다. 이는 상대적인 언어들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일겁니다.
"正見하여 온전히 중도, 공의 진리로 살자."
오늘도 말씀 한자락을 붙잡고 길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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