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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

금강경 제31 知見不生分(解)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0 목록 댓글 0

금강경 제31 知見不生分(解)

 

知見은 알음알이와 견해다. 지견불생(知見不生)은 알음알이와 견해를 내세우지 말라는 말이다.
무엇에 대한 알음알이와 견해인가? 我, 人, 衆生, 壽者에 대한 알음알이와 견해다.
금강경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은 개시허망하니 버리라고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31장 정도 오면 각자 아상에 대한 아견이 생기고 마찬가지로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 생기며 나름 알음알이도 생기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견해나 알음알이가 또 하나의 상이 되니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하얀 벽에 꽉찬 낚서를 지우고 한 복판에 커다랗게 낚서금지라고 쓰는 경우와 같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넜으면 배를 떠나야지 계속 배에 머물거나 육지로 끌고 간다면 오히려 장애가 될 뿐이다. 어느 정도 공부가 마칠 때쯤 되면 흔히 빠질 수 있는 지식과 견해의 함정이다. 집착을 놔라 하면 다만 집착을 놓을 뿐 집착을 놓아야지 라거나 집착을 놔야 된다 하는 견해를 일으키면 안 된다.
집착을 놔야된다 하는 견해를 일으키면 금방 괴로움이 생긴다.
역시 상을 놔라 하면 상을 놓으면 되는데 상을 놓아야 된다는 또 다른 상을 지어가지고 그 잣대로 천지를 돌아다니면서 상을 놨네 못놨네 자기의 주관적 相을 잣대로 온갖 시비를 한다. 육조 혜능대사는
"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마땅히 일체 중생이 불성을 지녔음을 보며, 마땅히 일체 중생이 새지 않는 지혜를 본래 스스로 구족하였음을 알며, 일체 중생의 자성(自性)이 본래 생멸이 없음을 마땅히 믿으므로, 비록 일체의 지혜 방편을 행하여 사물에 접해 중생을 이롭게 하더라도 나는 가르치고 너는 배운다는 마음을 짓지 않는다. 입으로는 모습이 없다(無相)는 진리(法)를 설하지만 마음에 너와 내가 있으면 곧 진리의 모습이 아니요(非法相), 입으로 모습 없는 진리를 설하면서 마음으로도 모습 없는 행을 행하여(無相行) 마음에 너와 내가 없어야 진리의 모습(法相)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본 경문에서도 역시 卽非 是名의 사유 공식으로 이름 지어진 모든 것 모든 개념들이 無自性의 실체 없는 空相임을 드러낸다.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是名我見人見 衆生見壽者見이기 때문에 여래께서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說했다 한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알음알이와 견해를 相으로 가지고 있어 佛說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세존께서는 이미 반야지혜를 깨달아 무상정등정각을 이루시어 무주(無住) 무상(無相) 무위(無爲)의 법으로 오직 중생을 위하여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을 설하는데 중생은 유주(有住) 유상(有相) 유위(有爲)의 법에 머물러 있다.
또한 法相者 如來說 卽非法相 是名法相(여래가 설한 법상이란 것이 곧 법상이 아니고 그 이름이 법상이다)라고 하여 제법실상의 법상 또한 연기실상으로 자성이 없는 空이므로 法相 역시 실체 없는 이름일 뿐이니 법상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일으킨자는 모든 가르침을 대함에 있어 바르게 알고 바르게 보며 바르게 믿고 이해하여 ‘가르침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모든 사물에 대한 相을 여의기 위해 즉비시명하며 공부를 이뤄도 어떤 알음알이와 견해가 또 하나의 극복해야 할 相이니 다만 相을 버릴 뿐 지견을 내지 말자. 가라하면 다만 갈 뿐 이렇게 가야한다거나 저렇게 가야한다는 상을 짓지말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세기12:1)"하니 '어디로 가야한다', '언제 가야한다' 등 일체 알음알이와 견해를 내세우지 아니하고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창세기 12: 4a)" 아브람이 고향인 갈데아 우르의 화려한 도시 문화를 뒤로하고 아무런 자신의 견해를 내지 않고 다만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간 것이다. 믿음의 조상이라 일컫는 아브람이 말씀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보며 바르게 믿고 이해하여 자신의 견해를 내세우지 않고 갈바를 모르고 간것에 그 위대성이 있다. 자신의 지견을 내지 않고 말씀을 좇아 아브람이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이 된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나의 지견을 내지 않는 것으로 부터 시작 된다. 신앙생활에서 나의 지견을 내 세우면 그 지견이 해를 가리는 구름이 되어 아버지의 뜻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보며 바르게 믿고 이해하여 행할 수 없다. 이 解 또한 하나의 지견이 아니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가 가진 相을 버리며 지견을 내세우지 말고 아버지의 뜻과 계합하는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기를🙏🙏🙏

댓글

 씨알

23.02.25 07:37

첫댓글 "세존께서는 이미 반야지혜를 깨달아 무상정등정각을 이루시어 무주(無住) 무상(無相) 무위(無爲)의 법으로
오직 중생을 위하여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을 설하는데 중생은 유주(有住) 유상(有相) 유위(有爲)의 법에 머물러 있다."
모든 것이 텅 빈 자기 마음임을 깨달을 때까지 지견과 상을 떠나라는 소리다.
이 지견과 상을 떠나는 것이란 어떤 알음알이든, 견해이든 다 내려놓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나의 지견을 내 세우면 그 지견이 해를 가리는 구름이 되어 아버지의 뜻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보며 바르게 믿고 이해하여 행할 수 없다. 이 解 또한 하나의 지견이 아니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가 가진 相을 버리며 지견을 내세우지 말고 아버지의 뜻과 계합하는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기를"
이 31장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다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도 다 지견이요 상임을 장로님의 말씀을 통해서 헤아리게 됩니다. 불도와 그리스도 모두 잘못된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에 탐익해 있음을 성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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