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지혜의 숲

琺寶壇經 14<반야(般若)>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0 목록 댓글 0

琺寶壇經 14<반야(般若)>

 

[般若, 波羅蜜, 煩惱 卽 菩提를 중심으로 살피기]
般若波羅蜜多心經
(प्रज्ञापारमिताहृदय
Prajñāpāramitā-hṛdaya-sūtram)의 반야(般若)는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प्रज्ञा prajñā) 또는 팔리어 빤냐(paññā)를 음역한 용어인데, 뜻에 따라 지혜(智慧)로 번역하고, 간단히 지(智) 또는 혜(慧)라고도 한다.
빤냐(paññā)의 "빠(pa)"는 '명료하게' '완전하게' '분명하게' '잘'을 의미하며 "냐(ññā)"는 '안다'를 의미 한다. 프라즈냐(प्रज्ञा prajñā)의 프라(pra)는 '완전하게' '충실하게'를 뜻하고 즈냐(jñā)는 '안다'는 뜻이다. 이로 보아 반야는 '世間의 일체현상을 밝고 완전하게 통찰하여 아는 안목'이라고할 수 있다.
한전(漢典)에 보면 '慧'
를 '指智慧的眼目能洞察世间的一切现象'라 해석 하여 세간의 일체현상을 능히 통찰하는 안목을 가르킨다고 하고 '慧光(智慧的光,能了彻一切)' 혜(慧)가 곧 지혜의 빛이며 능히 일체를 철저히 아는 것, 慧寂(佛教谓智慧和禅定) 불교에서의 혜(慧)는 선정의 고요함 속에서 드러나는 지혜라고 하여 음역인 반야(般若)를 智慧로 번역했음이 마땅하게 보인다.
불교에서는 보통의 판단능력인 분별지(分別智, vijnana)와 구별짓기 위하여 반야라는 음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며, 달리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도 한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三般若는 문자반야(文字般若)·관조반야(觀照般若)·실상반야(實相般若)이다.
문자반야(文字般若)는 방편반야(方便般若)라고도 한다. 이는 부처님이 설하여 문자화된 경·율·논을 전부 통칭한 것으로, 문자도 반야를 나타내는 방편이 될지언정 반야 자체가 될 수는 없지만, 문자로 말미암아 반야의 뜻을 전할 수 있으므로 문자반야라고 한다.
관조반야(觀照般若)는 경·율·논의 글자나 말에 의하여 진리를 알아내고 이 진리에 의해서 수행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이 관조반야의 진실한 지혜는 반드시 무념무분별지(無念無分別智)이다.
실상반야(實相般若)는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空의 진리이며, 관조반야를 통하여 체득되는 궁극이다. 천태종에서는 이를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이치를 깨닫는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하였고, 신라의 원효는 여래가 감추어진 중생이 곧 이것이라 하여, 실상반야가 곧 여래장(如來藏)이라는 놀랄 만한 사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불교에서의 반야는 밝게 비추어 바로 보며 건너는 방편 즉 世間의 일체현상을 無自性한 緣起實相으로 照見하여 空性을 체득해 가는 방편인 동시에 건너 다다르게 되는 궁극의 자리에서 밝게 드러나는 無相正等 覺智 이기도 하다.
이상으로 보아 반야의 특성을 '주객의 대립을 초월한 경지에서 감득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의식'
'초월적 지성과 판단력' '고요한 선정 상태에서의 의식 능력' '무분별지(無分別智)'로 볼 수 있다. 방편으로서의 반야는 속제(俗諦)이며 궁극의 具空 覺智로서의 반야는 진제(眞諦)이다. 唯識에서는 修行으로 오염된 識을 정화하여 지혜를 얻는 다는 전식득지(轉識得智)를 말하나 中觀은 진제의 반야가 얻어 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것이 無明에 가리워 졌다 무명이 걷히고 밝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아직 건너기 전의 分別智의 안목이며 다음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는 건너가는 방편의 공반야로 보는 안목이며 다 건넌 후의 '다시 보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궁극의 무분별지(無分別智)며 具空의 無上正等 覺智다.
이 궁극의 覺智는 12緣起에서 苦의 출발점인 無明을 탈피해 惑→業→苦로 윤회하는 굴레를 벗어나 탐진치 삼독을 씻고 一體相을 여읜 청정한 마음인 無住의 無緣大慈와 同體大悲로 고통과 불안 가운데 있는 중생들을 반야용선에 태워 같이 건너는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의 지혜다. 여기서 반야용선을 타고 피안으로 건너는 것이 바라밀(波羅蜜 pāramitā
)이다. 이 바라밀행이 世間의 번뇌(煩惱)속에서 연꽃 같은 깨달음의 지혜인 菩提(bodhi(बोधि))를 구하니 곧 번뇌 즉 보리(煩惱 卽 菩提)라고 육조께서 말 한 것이다. 한 마음 깨고 나면 이 모든 언설 또한 티끌인 것을 너무 장황하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디스바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