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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

琺寶壇經 21 <修行(수행)>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1 목록 댓글 0

琺寶壇經 21 <修行(수행)>

 

[돈수(頓修)]
육조 혜능의 돈법(頓法)은 단박에 깨치는 돈오(頓悟) 단밖에 닦는 돈수(頓修)다.
육조께서 “본래의 바른 가르침에는 돈(頓)과 점(漸)이 없으나, 사람의 성질(性質)에 저절로 날카로움과 둔함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점차점차 계합(契合)하고, 깨달은 사람은 문득 닦아서[頓修] 스스로 본래의 마음을 안다. 스스로 본성을 본다면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 본래 돈(頓)과 점(漸)이 없으나 근기에 따라 돈(頓)할 수도 점(漸)할 수도 있지만 깨친 사람은 문득 닦으라(頓修)고 한다. 여기서 돈수는 깨친사람 즉 돈오한 사람이 닦는 법을 말한다.
그리고 "자성에는 잘못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고 어지러움이 없으니 순간순간 지혜로써 비추어본다면 늘 법이라는 분별을 벗어나 자유자재하여 종횡으로 걸림이 없을 것인데, 세울 수 있는 무엇이 있겠는가? 자성을 스스로 깨달으면 문득 깨닫고 문득 닦아서[頓悟頓修] 점차적인 절차는 없다. 그러므로 어떤 법도 세우지 않고 모든 법이 고요히 사라지는데, 어떤 절차가 있겠느냐?”라고 말한다.
돈오견성한 사람은 모든 분별을 벗어났으니, 그에게는 어떤 절차도 있을 수 없다. 견성한 사람은 불이중도에 있는 사람이니 어떤 분별도 절차도 있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하여 육조는 견성한 사람에게는 점차적으로 닦아 나아가는 절차가 없으니, 돈오(頓悟)한 사람은 돈수(頓修)라고 하였다. 그런데 돈수라는 말은 무언가 어색하다. 견성한 사람에게 어떤 절차도 있을 수 없어서 점차적으로 닦아 나아가는 점수(漸修)가 있을 수 없다면 무점수(無漸修) 혹은 무수(無修)라고 해야 할 텐데, 왜 문득 닦는다는 뜻인 돈수라고 했을까?
‘돈수(頓修)’라는 말의 문자 그대로 의미를 보면, ‘돈(頓)’은 ‘갑자기’ ‘단번에’ ‘문득’이라는 뜻이고, ‘수(修)’는 ‘닦다’ ‘익히다’ ‘기르다’는 뜻이다. 그런데 닦고 익히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즉, 수행(修行)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익힌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修)’는 ‘갑자기’ ‘단번에’라는 뜻인 ‘돈(頓)’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단번에’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깨달음이지 익힘이 아니다. ‘단번에 익힌다’는 뜻인 ‘돈수(頓修)’라는 말은 사실 의미가 이루어질 수 없는 어색한 말인 것이다.
그런데도 왜 <단경>에선 돈수라는 말을 사용하였을까? 위에 인용한 육조의 말에서 견성한 사람에게는 점차적인 절차가 없다는 말이 돈수라는 말에 이어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견성한 사람에게는 점수(漸修)가 없다는 말을 하려고 점수의 상대어인 돈수(頓修)를 사용하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돈수의 실제 의미는 무점수(無漸修)인 것이다. 그렇다면 돈수(頓修)란 실참(實參)에서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 답의 힌트는 다음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순간순간 저절로 본성이 깨끗함을 보면, 저절로 닦고 저절로 행하여 저절로 불도(佛道)가 이루어집니다.”
순간순간 저절로 견성하는 것이 저절로 하는 수행이고 저절로 이루는 불도라는 말이다. 순간순간 견성한다는 것은 순간순간 불이중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순간순간’은 ‘문득문득’과 통하는 말이니 여기에서 돈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순간순간 본성을 보는 것은 문득문득 본성을 보는 것과 같은 말이므로, 순간순간 본성을 보는 것이 수행이라면 이 수행은 문득문득 닦는 돈수라고 할 수 있다.
돈수(頓修)는 돈오(頓悟) 견성 후 깨친 그 자리 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주(無住)의 진여일심(眞如一心)을 놓지지 말라는 말이다. 깨친 후 보호임지(保護任持)가 극히 어려우니 늘 깨어 일상삼매 오매일여 하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성경을 닳도록 읽었다는 성철스님께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는 말씀을 보고 오매일여(寤寐一如)의 돈수(頓修)를 주장한 것은 아닐까?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댓글

 씨알

23.05.07 01:37

첫댓글 "돈수는 깨친 사람 즉 돈오한 사람이 닦는 법

성경을 닳도록 읽었다는 성철스님께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는 말씀을 보고 오매일여(寤寐一如)의 돈수(頓修)를 주장한 것은 아닐까?"

깨치도 안고 별안간 돈오할 수 도 없고 돈오한 사람이 돈수할 수 있다는 말씀이 깊이 다가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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