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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

琺寶壇經 24 <佛行(불행)>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0 목록 댓글 0

琺寶壇經 24 <佛行(불행)>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
법달이라는 승려가 법화경을 7년이나 공부하고서도 아직 심미(心迷)하여 의심이 가득차 육조께 와서 그 의심을 풀 수 있는 법문을 청하면서 본편은 시작된다. 이 짧은 법문으로 <묘법연화경>을 줄여 부르는 <법화경(Sadharmapundarika-sutra)> 의 핵심인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과 붓다께서 일대사인연(一大事 因緣)으로 이 땅에 오신 뜻인 개시오입(開示悟入)의 사불지견(四佛知見) 사문(四門)을 說 하셔서 승려 법달을 돈오케 하신다. 본격적인 법화경 강설(講說)을 하기전 마음 공부하는 사람들의 함정인 아집법집(我執法執)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안팎에 미혹되지 말고 양변(兩邊)을 떠나라. 밖으로 미혹하면 모양(相)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면 공(空)에 집착하니 모양(相 산냐)에서 모양을 떠나고 공(空 순냐)에서 공을 떠나 미혹되지 말라(於相離相 於空離空). 이렇게 양변(兩邊)을 떠난 중도(中道)로 한 생각에 마음이 열리면 일불승에 올라 탄다고 한다.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은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 三乘이
일불승(一佛乘)으로 수렴 된다는 사상이다.
삼승(三乘)이란 깨달음으로 이끄는 방편으로 세가지 수레며 triniyanani라고 한다.
성문승(聲聞乘아라한 ; 불제자의 탈것)은 부처의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의 설법을 듣고 아라한(阿羅漢)의 깨달음을 얻게 하는 교법이다.
연각승(緣覺乘벽지불 독각;혼자서 깨달은 자의 탈것)은 부처의 교법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12緣起의 연기법(緣起法)을
깨닫는 교법이다.
보살승(菩薩乘 ; 대승 구도자의 탈것)은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보살들이 수행하는 육바라밀을 행하며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라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대승(大乘)이다.
소승불교에서는 보살승 대신 불승(佛乘;부처의 탈것)을 내세운다.
각각의 삼승(三乘)은 각 사람의 근기(根氣)에 따른 방편일 뿐 그에 매달리지 말고 一佛乘으로 향해 가야 한다고 말한다. 법화경의 7가지 비유인 ‘법화칠유(法花七喩)’ 중의 하나인 화택삼거유(火宅三車喩)라는 비유설화가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을 잘 나타낸다.
어느 날 부자가 외출한 사이에 철모르는 아이들이 노는 집에 불이 났다. 더욱이 아이들은 불이 난 줄도 모르고 뛰어노는데 정신이 없자, 아버지는 한 가지 비책을 생각하였다. 아이들이 평소에 원하던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가 문 밖에 있으니, 문밖으로 나와서 마음대로 가지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들은 좋아하면서 모두 문 밖으로 나왔다. 우선 아이들은 불난 집에서 피난을 한 것이다. 그러나 문 밖에는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가 아닌 한 큰 흰 소가 끄는 수레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약속한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 대신 이 세상에도 드문 큰 흰 소가 끄는 훌륭한 수레를 선사한 것이다. 아이들은 뜻하지도 않았던 큰 수레를 선물로 받고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위없는 기쁨을 느꼈다. 이것이 화택삼거의 비유설화이다.
이 이야기 속의 부자인 아버지는 부처, 아들들은 성문연각의 소승, 불난 집은 고해인 이 세상, 세 가지 수레는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법, 한 큰 흰 소의 수레인 대백우거(大白牛車)는 일불승법이다. 부처는 생사의 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얼마 동안은 근기에 따라 성문·연각·보살의 삼승법을 방편으로 베풀었지만, 결국에는 일불승법이란 진실한 가르침으로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을 비유한 이야기이다.
일불승(一佛乘)이란 불지견(佛知見)을 갖추고서 스스로 부처라고 의심이 없이 믿기에 자연스레 불행(佛行)을 하게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열고 들어가는 첫관문을 불지견으로 연다. 그 불지견이 곧 개시오입(開示悟入)이다.
•개(開)는 즉 개제(開除)로서 중생이 미망(迷妄)을 깨뜨리고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보게 되는 것으로 깨달음의 지견을 여는 것(開).
• 시(示)는 즉 현시(顯示)로서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지혜가 생겨 우주의 만덕(萬德)이 밝히 드러나 보이는 것으로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는 것(示).
• 오(悟)는 즉 각오(覺悟)로서 우주의 본체事理 그대로가 연기살상이며, 연기실상 그대로가 본체임을 깨닫게 되는 것으로 깨달음의 지견을 깨침(悟)
• 입(入)은 즉 증입(證入)으로서 진리인 그대로의 본체에 증입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깨달음의 지견에 들어가는 것(入)이다
불지견(佛知見)인 개시오입(開示悟入)이
중생들로 하여금 완전히 묘법(妙法)을 체득(體得)하게하여 깨달음의 세계로 들게 하는 일불승(一佛乘)의 법이다. 근기에 따른 방편인 삼승(三乘)이 모두 일불승(一佛乘)에 수렴된다. 법달이 일불승을 듣고도 이불승을 구하기 때문에 일불승을 행하지 않아 법화경에 굴려지는 꼴이 되었으니 더이상 중생견(衆生見)으로 미혹에 끌리지 말고 불지견(佛知見)으로 법화경을 굴리라는 말로 강설을 마친다. 강설로 법달이 깨치자 마지막으로 佛行이 개시오입(開示悟入)의 四門 일불승(一佛乘)이며 법화경은 오직 이 법을 말한 것이기에 중생도 사문의 일불승 법을 행하면 부처라고 말한다. '그때 들은 이들 중에 깨닫지 못한 자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법화경을 읽을 수 없는 문맹의 육조께서 7년 동안이나 읽어 달달 외우는 법달에게 딱 한번 읽어 달라 부탁하고 단박에 법화경의 종지(宗旨)를 說해 깨우침의 큰 흰소의 수레에 태우니 이 어찌 신묘하지 않은가? 일년을 공부 한다해도 깨치지 못할 여덟권의 법화경을 한번 듣고 不立文字로 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돈법(頓法)을 펼쳐 중생들의 눈을 뜨게하니 찬탄치 않을 수 없다. 가방끈 짧다고 스스로 움추려들지 말자! 화이통!!!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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