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법문(百日法門)] 제1장 서2, 중도 사상 ① 교학(敎學)에서의 중도 사상_성철에 대한 잡설
| 조선시대의 억불과 일제시대의 일본불교 침투 그리고 해방 이후 여러 번의 법란을 거치며 조선불교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졌다. 특히 교학의 침체를 가져왔는데 그것은 학문적 접근이 가능한 대학과 강원의 설치가 극히 어려웠고 주로 경문을 다루기에 경서와 서책의 출판 유통이 극히 제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 우리와 똑 같이 중국불교를 들여온 일본은 교학을 많이 발전 시켰다. 따라서 해방 전부터 일본 유학을 통해 교학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교학을 발전 시키기 위해 수승한 강백들이 배출 되었는데 일부 일본불교와 중국불교의 교학에 치중되어 남방 상좌부 불교와 티벳불교의 교학을 놓친 것이 아깝다. 철 스님도 요즘처럼 정보가 잘 유통 되지 못한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교학을 이루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중국불교의 교학을 총망라해 짧게 정리 한 것은 철 스님의 교학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백련함 서고의 만여권이 넘는 장서가 말해준다. 흠이 있다면 당시 타임지 등 미일의 잡지를 많이 읽다 보니 잡학이 강설에 많이 등장하고 과학의 원리들로 불교 교리를 증명하려는 우를 범한 것이다. 당시 해인사 강백은 팔만대장경을 번역한 지관스님 이셨지만 용수의 중론을 강설하지는 못했다. 중관사상은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를 비판하며 전개된 용수의 산스크리스어 「중론」이 티벳불교로 전해져 티벳불교의 최고위 과정으로 발전 되었으나 당시 우리나라 불교는 티벳불교와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용수의 원음이 아닌 중국과 일본불교의 중론 해석으로 공부하고 전할 수 밖에 없었다. 철 스님도 백일법문에서 화엄종, 삼론종, 천태종의 중도사상을 설했다. 철 스님 같은 수승한 분이 용수의 「중론」을 직접 번역하지 못한 것이 몹시 안타깝다. 최근 90년대 후반 부터서야 김성철, 박인성, 이태승, 남수영, 등이 「중론」 산스크리트본에대한 정확한 해석을 통해 「중론」중후기 중관 논서의 연구로 중관학의 지평을 넓혀왔다. 이후 김정근의 쁘라산나빠다 역주는 국내 『중론』 및 중관 연구에 또 다른 기반을 제공해준 매우 소중한 성과물이다. 최근들어 신상환 교수가 「공성의 배움터 중관학당」을 열어 서울과 실상사에서 활발히 번역하고 전파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中道에 대해 길장(吉藏: 549~623)에 이르러 「삼론현의(三論玄義)」에서 팔부중도(八不中道)를 강조하는 파사(破邪)와 현정(顯正)이라는 (二門)의 구조로 꽃을 피웠다. 쌍차쌍조(雙遮雙照) 파사현정(破邪顯正) 이 중국불교의 중관학에 대한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 中論의 歸敬偈 ‘무언가에 의지하여 생겨난 것[緣起](이기에)/ 소멸함이 없고[不滅] 생겨남이 없고[不生]/ 그침이 없고[不斷] 항상함이 없고[不常]/ 오는 게 없고[不來] 가는 게 없고[不去]’ ‘다른 의미가 아니고[不異] 같은 의미가 아닌 것[不一]이니/ 희론(戱論, prapañca)이 적멸하여 적정(한 상태에 머물 수 있는) 가르침/ 정등각자의 말씀들의/ 진리, 그것에 경배하옵니다.’ ★中은 가운데가 아니고 正이다. 중도 실천은 八正道 수행이다. |
댓글
씨알
23.07.28 10:22
첫댓글 "中은 가운데가 아니고 正이다. 중도 실천은 八正道 수행이다."
장로님의 말씀을 통해서 중도의 의미를 새겨봅니다,
중은 어정쩡한 가운데 토막이 아닌 바른 자리 正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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