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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

【백일법문(百日法門)】 서-2.중도 사상③ 대승비불설 비판_성철에 대한 雜說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1 목록 댓글 0

【백일법문(百日法門)】 서-2.중도 사상③ 대승비불설 비판_성철에 대한 雜說

 

대승비불설은 대승과 소승의 대립관계에서 '나는 이렇게 들었다 여시아문(如是我聞)'로 시작되는 대부분의 대승경전이 붓다의 원음인가라는 문제제기로 부터 비롯된다. 처음에는 대승경전에만 제한적으로 제기된 문제가 經律論 三藏 전체로 번져 대부분 결집 과정과 불교사적 측면에서 다시 한번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논의가 더 거칠어지면 모든 經律論 三藏을 불태울 지경에 이르니 각자의 주장보다 학자들의 연구로 진짜 원음에 가까운 경전을 찾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 과정에서 불교사가 새로이 정립되고 각 종파와 지역별로 가지고 있던 경전을 정경과 위경으로 구분하고 크게 남방상좌부 불교 경전과 대승경전을 대별하여 불설로 인정하며 대승과 소승의 경전 중 시대별로 붓다 생전에 더 가깝고 불교가 분화 되기 전까지 형성된 경전을 불설로 하기로 해 일단 논란은 수면 밑으로 가라 앉았다. 철스님 께서는 ' 가만히 보니께 ○○경도 불설이 아니드라 이 말이여'라는 말을 반복하며 불설을 찾아 율장의 초전법륜까지 찾아 들어가 처음 붓다의 원음이 苦와 樂을 여의는 中道였기 때문에 자신이 설법하는 中道가 붓다의 원음이니 믿음으로 받아들이라고 간곡히 요청하신다. 사실 다른 면에서 보면 불설 비불설로 시작해 역사적으로 중도론이 정당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자칫 중도사상 자체를 불설 비불설 논란의 중심에 놓기 쉽기 때문이다. '이변을 버리고 중도를 정등각하였다.'는 이 초전법륜이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부처님의 근본법이라고 확증하려면 붓다의 '중도대선언(中道大宣言)'이라고 무조건 따라서는 않된다. 苦樂中道역시 당시 고행중심 수행 전통과 쾌락중심 종교전통의 대립에서 벗어난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苦樂을 비롯해 常斷 등 兩邊에 상대적인 견해들은 無自性, 緣起, 空으로 논증해 中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은 용수의 논리가 아니라 붓다가 처음 깨우친 진리가 緣起法과 연기법에 따른 유전연기와 환멸연기인 苦集滅道인 四聖諦 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바탕으로 아비달마의 斷見과 常見을 파사현정한 논서가 용수의 중론이다. 붓다께서 깨달았다는 연기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원리를 붓다께서 드러내어 새로운 세계관으로 정립했다는 것이다. 중도역시 연기법으로 부터 연한 것이니 마찬가지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실행이 어렵다. 苦樂 常斷의 견해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自性이 없어 서로 연기로 의지하여 가립한 空한 것이니 그에 취착하지 말고 바른견해(正見)의 지혜로 살라는 것이다. 왜 양변을 떠난 중도가 바른견해인가를 논서가 아니라 경에 있는 연기법으로 논증하면 쉽다. 그러나 온갖 지식을 동원해 어렵고 어렵게 말해야 권위가 서고 더 위대한 진리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유혹을 쉽게 버리지는 못한다 이 말이여! 철 스님의 말투로 맺는다. 오늘도 하늘엔 구름이 해를 가려주길 바라는 연기실상 속에 여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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