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진•치(貪瞋痴) 三毒 불가에서는 고통의 주범으로 탐•진•치(貪瞋痴) 三毒을 말하고 있다. 무엇이 탐진치인가? 그 답은 성경의 창세기에 아주 잘 기록되어 있다. 에덴 동산의 중앙에는 생명 나무와 지혜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하와의 마음 가운데 욕(慾)과 탐(貪)이 스멀 스멀 올라오자 지혜 나무의 열매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며 탐스럽게 보는 것이다. 지혜의 나무 열매는 따먹으면 죽는다는 금단의 열매였다. 죽음도 불사하고 따먹게 만든 것이 貪이다.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는 탐이 아니다. 필요한 만큼을 넘어서는 욕심이 탐이다. 왜 탐이 일어나는가? 치(痴) 즉 어리석음 때문이다. 탐하는 대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하와는 지혜 나무가 하나님과 인간의 경계로 넘어서면 죽는 나무로 바로 보지 못하고 탐을 일으켜 따 먹고 말았다. 지혜나무를 바로 보는것은 그냥 먹지 말라고한 나무열매로 보는 것이다. 진(瞋)은 무엇인가? 탐한것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화를 내고 분통을 터트리는 것이다. 진이 무서운 것은 화와 분과 원망이 자책하는 자신 뿐만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까지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록에 보면 아담의 아들이 둘이 있는데 가인과 아벨이다.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목동이였다. 아직 제사법도 정해지지 않은 때에 가인은 자신이 농사 지은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기르던 양의 첫 새끼로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자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제사를 받고 안받고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가인은 제사의 주인이 자신인 것으로 잘못 본 어리석음으로 인해 제사를 탐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자신이 드린 제사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받아야 된다고 하나님을 강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소욕대로 조종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이 가인의 탐이였다.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화나 분을 낼 일이 아니였다. 자신의 소산을 아벨의 양과 바꿔 제사 지내면 될 일이였다. 분이 충천하여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한 가인은 들에서 분풀이할 대상으로 동생 아벨을 찾았다. 왜 네 제사는 받고 내 제사는 안받냐고..너만 없었으면 내 제사를 왜 안받겠냐고 ..결국 그 분을 이기지 못하고 제사를 독점하기 위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다. 제사에 무지한 치(痴)는 제사에 대한 독점의 탐(貪)을 불러오고 탐(貪)은 분과 화를 내는 진(瞋)을 일으켜 결국 동생을 죽이는 참극에 이르게 했다. 이렇게 탐진치는 연기적(緣起的)으로 작용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삼독(三毒)이라한다.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고 성령이 임하자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아가 무명(無明)을 떨치고 하나님의 지혜를 증득하고 자신의 모든 탐(貪)을 비워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는 케노시스를 이루고 유혹을 이기는 지혜를 얻었다. 예수께서는 광야 사십일 동안 제나의 삼독을 뿌리채 뽑고 얼나로 솟나신 것이다. 인류 고통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거 되었다. 이제 우리의 삼독이 문제다. 어떻게 우리의 제나를 죽여 삼독을 멸하고 얼나로 솟날 것인가? 예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에서 시작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나로 솟나는 것이다. 깨닫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약속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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