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기독교영성

예수 그리스도의 패러독스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0 목록 댓글 0

 

예수 그리스도의 패러독스

패러독스(paradox  παράδοξος) 의 어원 ‘para’는 ‘반(反)’ ·‘역(逆)’을, ‘dox’는 ‘의견’을 뜻하며 분명하게 모순되어 있거나 잘못된 결론을 이끌거나 하는 논증이나 표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진리가 있는 것을 일컫는다.
보통 패러독스 안에는 대립되는 가치가 있으며 변증적인 가치혁명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진리를 드러낸다.
삶은 판단과 선택의 연속인데 예수께서는 패러독스적 판단과 선택 즉 혁명적 삶을 원하신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며 회개(메타노이아)를 촉구한 것은 패러독스적 의식전환을 요구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적 패러독스는 우리의 관심을 증폭 시키고 믿음에 대한 도전을 주며 깊이 통찰하게 하고 진리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진리를 실천하는 추동력이 된다.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마10:34 )는 패러독스가 있다. 평화의 왕께서 화평이 아니라 싸움을 위한 검을 주러 오셨다고 패러독스적 표현을 한 이유는 무얼까? 또 어떤 의식전환을 위한 패러독스인가?

장차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제자들을 공회에 넘기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게 될텐데(마10:17) 이러한 박해와 싸울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신다. 이러한 박해와의 싸움에 제자들을 공회에 넘기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가족들로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할 것이기 때문에 (마10:2 )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게 되고서로 자기 집안 식구끼리 원수가 된다고(마10:35~36) 말하며 가족간의 싸움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 싸움은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따라야 함으로(마37~38) 자기와의 싸움도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이 화평이 아닌 싸움의 역설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전의 화평은 거짓 화평이며 그 거짓 화평이 혁명적 싸움으로 깨어진 뒤 비로소 참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렇게 화평 대신 박해와의 싸움, 가족과의 싸움, 자기와의 싸움에 필요한 말씀을 대신하게 할 성령의 검(마10:20)을 주러 오셨다고 역설적으로 말씀하신다. 복음은 기쁜 소식(유앙겔리온)인데 역설적 이게도 싸움으로 시작하여
그 싸움 끝에 자기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는다(마10:39)는 역설로 마무리 한다. 패러독스로 시작해 패러독스로 수미쌍관한 네러티브요 메타포다.
이 밖에도 성경에는 많은 패러독스적 표현들이 등장한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낮아져야 높아진다.'
'생명을 얻으려면 잃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 멍애를 맨다.'
이 밖에도 역설적 표현이 많으니 찾아보기 바란다.
찾아서 이러한 역설들이 우리에게 어떤 통찰과 지혜를 주고 진리로 인도하며 어떻게 역설적인 혁명의 삶을 살 것인지 실천의지를 다져보면 좋겠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