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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

코로나19와 진정한 예배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0 목록 댓글 0

 

<‘진정한 예배,' 교회건물이 아닌 '나의 삶'에서 >
[강남순 교수 글]
1. 교회의 모임들을 통해서 코로나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는 이 시기에, 교회에 직접 가서 '대면 예배'를 드리는 만이 ‘진정한 예배’라고 가르치는 교회들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주장은 틀렸다. 교회 건물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진정한 예배라는 이러한 주장은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닌다. 첫째,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왜곡된 이해; 둘째, 예배란 무엇이며, 그 예배의 기능과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왜곡된 이해이다. 대면 예배만이 진정한 예배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특히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런데 보이는 건물인 ‘교회’ 자체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려야 하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다. 어거스틴의 용어라고 알려진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와 ‘보이지 않는 교회 (invisible church)’라는 개념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보이는 교회’란 제도화된 조직과 구조 속에서 작동되는 교회개념인데, 그 자체가 교회의 절대적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2. ‘보이는 교회’란 그 자체로서 자기충족적인 ‘플랜 A’가 아니다. 언제나 이미 ‘플랜 B’이다. 즉 무수한 다른 양태의 종교 공간 중 하나일 뿐이다. 대부분의 많은 제도화된 기독교회들은, 그 자체의 존립을 위해서 권력과 물질, 그리고 번영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전락되었다. 화려한 교회 장식들, 교황/신부/추기경/목사 등이 입고 있는 찬란한 복장들, ‘성직자’라고 스스로 명명하는 기독교 지도자들, 복잡한 예식들과 조직들을 가지고 통제하는 거대한 조직화 등은 교회가 마치 ‘플랜 A’인 것처럼 행사하는 전형이다. ‘교회’라는 제도는 신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그 어느때 보다도 중요하다. 나는 로마의 바티칸을 방문하면서, 인간이 쌓아놓은 이 엄청난 ‘예수의 제도화’속에서 정작 ‘예수’는 부재하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느꼈다. 화려한 성당/교회 건물들, 그 건물들 속에 정작 ‘노숙인’으로 살다간 죽어간 ‘예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그들의 문학작품, 철학/신학적 글에서 이미 이러한 점들을 경고하고 지적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아마 예수가 신부나 목사로 서품이나 안수받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면, 필경 초기에 탈락했을 것’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농담만이 아니다.

3. 다양한 신학자/철학자들이 제시하는 교회론이 있는데, 나는 존 카푸토(J. Caputo)가 제시하는 교회 이해가 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적절하고, 설득력있는 이해라고 본다. 그는 ‘플랜 B로서의 교회”를 강조한다. ‘교회’란 그 자체로 권위가 생기고, 그 권위에 도전할 때 지탄과 저주를 받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다. ‘플랜 B로서의 교회’란 예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소환하고, 상기하고자 하는 “예수의 기록보관소 (The archive of Jesus)”일 뿐이다. ‘예수에 대한 기억’이란 무엇인가. 무조건적 환대, 경계 없는 포용과 사랑, 생명에 대한 연민과 연대의 소중함을 상기하고, 실천하고자 애쓰는 것이 바로 ‘예수에 대한 기억’이 되어야 한다. 예수는 ‘제도화된 종교/교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그의 메시지는 신을 사랑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타자를 사랑하는 것, 환대하는 것, 소수자에 대한 책임성과 그들과 연대하는 것임을 삶으로 보이고자 했다. 그래서 카푸토에게 ‘종교(기독교)란 연인들을 위한 것 (religion is for lovers)’이며, ‘종교란 책임성’이다. 그렇지 않을 때 그 종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랑과 연대, 타자와 이 세계에 대한 책임성이 바로 ‘예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기독교’가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4.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우편번호가 있는 교회 건물만이 예배 장소라는 생각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 자신의 일상적 삶에서 그 ‘진정한 예배’가 체현되도록 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기를 연습하고,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지우고, 자신 속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포용과 연민, 그리고 연대의 원’을 확장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자신의 일상적 삶 속에서 이러한 ‘예수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다양한 자리—그곳이 바로 ‘진정한 예배’라는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이 된다. 그곳이 자신의 거주지든, 전철이든, 도서관이든, 카페든, 시장이든 그 어떤 장소(place)와 상관없이, 그 자리는 ‘거룩한 공간 (sacred space)’으로 전이될 수 있다. 대면 예배만이 진정한 예배라고 강조하는 교회들의 말하지 않는 주된 관심이 실제로는 ‘헌금’과 ‘교회 세력확장’이 그 우선적 의도가 아니라면, 이 코로나 위기를 마주하면서, ‘진정한 예배’란 과연 진정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지 이번 기회에 앞서서 재개념화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모든 생명의 평등, 자유, 사랑, 연민, 환대, 책임성 등의 가치를 담은 ‘예수의 기록보관소’로서의 교회란, 보이는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우선적으로 나 자신 속에서, 나의 일상적 삶 속에서 체현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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