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노 저어 건너가기
인간 실존의 한계상황은 두려움과 고통이다. 이 두려움과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마태복음 14장 22절로 34절을 읽어 보자. 본문은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호수를 건너다 겪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 그림언어를 잘 드려다 보면 삶의 여정 가운데 겪는 실존의 문제들이 고스란이 드러난다. 때로는 불어오는 맞바람을 맞으며 싸워야 되고 삶을 집어 삼키려는 뜻한 풍랑으로 뒤우뚱거리며 절망할 때도 있을 수 있다. 제자들이 바람과 파도와 싸우던 때가 새벽이였다. 날이 밝기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우리가 살면서 이 어두운 때를 만나기도 한다. 역사의 한 가운데서 휘몰아치는 회오리 속에 불가항력적으로 삶이 송두리째 부서지기도 하고 목숨이 경각에 이르는 질고의 고통가운데 놓여지기도 하며 때로는 물질적 파산으로 인해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방향을 잃고 헤맬수도 있다. 인간관계가 파괴 되어 깊은 암흑의 굴 속에 스스로를 유폐시키기도 한다. 이 모든 상황이 부존재를 가르키는 인간 실존의 고통과 두려움의 대상이다. 본문의 네러티브에서 이 모든 실존의 문제들은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던 물길 위의 광풍과 높은 풍랑으로 대비되고 있다. 다행히 다 죽어갈 절망의 그 때 그들의 스승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 그들에게 오고 있었다. 순간 귀신으로 착각해 두려워 했으나 이내 스승인걸 알아채고 위기 탈출의 희망에 부풀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자 뱃길이 잔잔해 졌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기전 마태는 베드로를 등장 시켜 에피소드를 만든다.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 오자 열혈남 베드로가 나서 주여 주님이 맞으시면 물위를 걸어오라 명하소서 하자 예수께서 오라 하셨다. 베드로가 처음 몇 발짝은 잘 걷다가 높은 파도를 보자 두려워 그만 빠져가고 있을 때 살려달라고 외치는 베드로의 손을 잡고 건져올리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했느냐고 베드로의 정곡을 찌르신다. 어디 베드로 뿐이겠는가? 처음 주님을 만나고 주로 영접한 뒤로 그 기쁨에 넘쳐 걷다가 서서 웃고 또 걷다가 서서 웃고 실성한 사람마냥 매사에 할렐루야 감사와 찬양이 넘치던 내 자신도 그 바람 앞에 그 파도 앞에서 주님이 아닌 바람과 파도를 볼 때 천길 넝떠러지로 날려 떨어지고 풍파에 허우적 거렸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지금 그렇게 컴캄한 터널 속에 끝이 어딘지 모를 고통과 두려움에 떨고 있을 우리 중 누군가에게 예수께서는 믿음이 작은자여 왜 의심하는냐고 묻고 계신다. 앞뒤가 콱 막혀 퇴로가 안보여서 마냥 절망 가운데 머리 숙이고 엎뎌있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작은자여 왜 의심 하느냐?'는 주의 말씀이 안들릴지도 모른다. 오히려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내 삶의 배에 같이 올라타 계심을 깨달아 아는 순간 그 분의 면전에 서는 순간 내 손에 믿음의 노가 쥐어지고 내 인생의 배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타고 주와 함께 노를 저어 두려움과 고통의 바다를 건너리라 믿는다. 건너갈 때는 꼭 먼저 건너간 스승이 있어 길을 가르치고 방법을 익혀 스승과 길과 방법을 믿고 건너야 됨을 잊지말자.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가세 가세 건너가세 저 언덕으로 건너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