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의 작동 방식
수처작주(隨處作主)
마태복음은 하나님나라 복음이다.
마태복음 15:1~20에서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제자들이 떡 먹을 때 손을 씻어야 된다는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 않는다고 시비하자 예수께서는 오히려 고르반을 예로들며 전통을 핑게로 율법을 어긴다고 힐난하신다. 그리고 이어 손을 씻지 않고 먹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마음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설파하신다. 손을 씻고 안씻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문제며 하나님나라를 산다는 것은 마음의 법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께서는 14장에서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선언과 함께 마음의 법으로 율법과 규례와 전통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 선과 악, 죄와 의 라는 이원적 경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러한 무너뜨림은 하나님 나라의 법이 이원적 경계성이 없는 것을 말 할 뿐만 아니라 이원적 경계성으로 심판자와 피심판자라는 권력의 구조를 만들어 행사해온 당시의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에 대한 도발이였고 예수님을 죽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였다. 마음의 법으로 율법의 이원적 경계성을 허문뒤에 이 마음의 법이 어떻게 하나님나라에서 구체적으로 작동되는지 15: 21~28의 가나안여인(수로보니게 여인)에 대한 기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땅에 이르렀을 때 귀신들려 흉악하게 된 딸을 둔 여인이 긍휼이 여겨 딸을 낫게 해줄 것을 간청한다. 그냥 형식적으로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개취급을 당하면서도 자신을 한 없이 낮춰 딸을 위해 간청한다. 여기서 여인의 딸에 대한 사랑과 케노시스의 하심(下心)이라는 마음이 나타난다. 예수께서 이 여인을 보고 믿음이 크다하시며 여인의 믿음을 드러낸다.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딸과 그 어미를 향한 예수님의 컴패션과 긍휼이 그 믿음과 만나 그 딸이 나음을 얻는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15:28) 그 어미와 딸의 기쁨이 얼마나 컷을까 짐작하기 조차 어렵도록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기쁘고 가슴뛰는 나라다. 하나님나라에서 이렇게 기쁘고 가슴 뛰는 일이 예수님의 컴패션과 긍휼 그리고 귀신들린 딸을 둔 여인의 딸에 대한 사랑과 어떻게든 낫게 하고픈 절박함에서 나온 비움과 하심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작용하여 일어 났다. 이 마음이 一心이요 '얼나'의 요체다. 하나님나라는 얼나의 一心으로 작동한다. 얼나의 一心은 탐•진•치 (貪•瞋•痴) 삼독을 벗어난 마음이요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내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며 원성실성(
圓成實性)을 이룬 마음이다. 육조혜능 이후 직지인심(直指人心)의 禪法을 전한 임제의현( 濟義玄, ?~867)선사 임제록의 상당(上堂)편에 이은 시중(示衆)편의 사조용(四照用)에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 지금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이다”라는 뜻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 놓여도 진실하고 주체적이며 창의적인 주인공으로 살아가면, 그 자리가 바로 행복의 자리, 진리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으로 전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主' 대신 '心'을 놓고 말하고자 하는데 우리의 주인이 心이기 때문이다. 임제도 이 말 앞에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짓일 뿐이다.”(向外作工夫 總是癡頑漢)라고 하여 안으로 마음 공부에 전념하라고 말하고 있다. 主의 자리에 대신 놓은 이 心이 하나님께서 본래 주신 마음자리인 얼나의 一心이며 而生其心이며 心王인 것이다. 어디에서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그 마음이 주인으로 오롯이 서면 그 선 자리가 진리인 것이다. 하나님나라에서 이렇게 마음이 작용하면 立處皆眞 뒤에 이어지는 경래회환부득(境來回換不得)의 어떠한 경계를 만나도 끄달리지 않는 대 자유인이 된다. 하나님나라의 진정한 얼나의 사람은 一心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끄달리거나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다. 하나님나라는 이렇게 마음법으로 귀신들린 딸과 어미가 지닌 한계상황의 경계를 건너 자유를 누리는 나라다.
우리 모두 隨處作心 立處皆眞
應無所住 而生其心 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