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로스(ὄχλος)
마태복음 14:15~21에 보면 흔히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여자와 어린이를 빼고 오천명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긴 사건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제자들이 날이 저물고 빈 들인데 무리(군중)를 마을로 보내 먹게 하자고 하자 예수께서 '갈 것 없다 너희가 줘라' 하는 데서 시작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형편을 모르고 그랬을까? 아니다 제자들의 의식이 아직 그들과 무리를 자신들과 하나로 보지 못하고 따로 분리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너희가 주라고 너희가 자신을 책임지듯 무리를 책임지라고 한 것이다. 제자들이 완장차고 무리들에게 완장질 하거나 방관자로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그들과 하나되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말 할 때 보통 첫째 오병이어 둘째 군중 셋째 예수님 넷째 생명의 떡을 중심으로 말하고는 한다. 첫째 오병이어를 중심으로 말 할 때는 강력한 헌신을 요구한다. 오병이어를 내 놓은 제자들 처럼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내 놓으라고 말한다. 거기에 허락된 모든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말과 함께 청부론이 더해지면 말이 좋아 헌신이지 고혈을 짜는 종교적 수탈에 가깝다. 오병이어가 아니라 일병일어도 없는 가난한 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죄인이 되고 소외될 뿐이다. 둘째 군중을 중심으로 말 할 때 군중이라고도 하고 무리라고도 표현하는 헬라어는
오클로스(ὄχλος)이다. 여기서 오클로스는 정치, 경제, 사회, 종교의 이해관계 속에서 차별과 소외를 당하며 삶의 기반을 잃어버리게 된 갈릴리 지역의 민중 이라고 특징지워져 민중신학의 모티브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무리들이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친다는 점이다. 이 군중들은 경신성(피암시성), 충동성(변이성), 과장성(단순성), 편협성(전횡성) 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군중심리에 의해 누군가 가르키는 손가락 쪽으로만 바라 보고 외치는 소리만 따라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다른 한편으로 압박과 수탈의 권력을 향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기도 한다. 특히 오르코스가 정치, 사회, 경제분야에서 구조적으로 고통 받는 민중으로만 규정될 때 운동의 성격을 띤 또 하나의 저항하는 권력으로 나타난다. 예로써 60년대 에서 80년대 초 까지 독재 체제에서 고통받던 민중들이 현재 권력의 중심에 있고 박정희를 신으로 섬기던 사람들은 신의 딸이 탄핵 당하게 되자 현 집권 여당을 향해 태극기를 들고 흔들며 신의 딸과 자신들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이라고 외치며 스스로 오클로스화 한다. 사랑제일교회로 대표되는 극우 기독교 일파는 자신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명박 전대통령이 사법처리 받자 스스로 탄압 받는 오클로스화 하여 대정부 투쟁하는 선지자적 목자로서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김종인 대표가 국민의힘을 자꾸 좌향좌 하려는 것도 자신들의 세력을 기득권세력이 아닌 오클로스로 둔갑시켜 이 상황을 뒤 엎을 수 있는 동력을 얻기 위한 술책이다. 적폐로 권력을 잃은 기득권 세력들이 문정권의 독재로 부터 탄압 받는 민중이라고 탈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그들 속에 있는 옛날 운동권에서 자금은 변절한 잡것들의 아이디어가 아닌가 한다. 그들은 민중을 동원하는 운동의 추동성과 역동성이 어디서 나오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클로스를 상대적인 정치, 사회, 경제측면에서 강조하다 보면 이렇게 권력 변화의 상황에 따라 어제의 권력이 오늘의 오클로스가 되고 오늘의 오클로스가 내일의 권력이 되는 반복의 악순환을 하게 된다. 당시 예수께서 측은히 여겼던 오클로스는 갈릴리 지방에 살고 있던 민중들이다. 정치 경제적으로는 로마의 식민통치와 대리통치자들로 부터의 핍박과 수탈로 고통 당하고 사회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의 변두리 지역으로 소외되고 종교적 착취에 고스란히 노출된 오클로스 였다. 하나님나라에는 이러한 오클로스가 있다는 것이고 상대적 지위의 회복만이 아니라 그들의 실존적 고통과 절대결핍 그리고 속박을 풀어헤치고 평안과 풍요 그리고 자유를 줄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인 것이다. 셋째 예수께 촛점을 맞추어 말 할 때 초월적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라는 점만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사렛의 청년 카펜터로서 머리둘 곳이 없었던 오클로스 중의 하나로 그들의 생생한 삶속에 함께하였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인 기적을 행사한 초월적 존재로서 위로 부터 오는 계시로만 부각될 때 이 땅위의 하나님나라의 복음 전하고 이루는 그리스도가 아닌 뜬 구름 위에 있어 오클로스와 상관 없는 죽은 그리스도가 된다. 넷째 이 이야기 전체를 예수께서 하늘에서 온 생명의 떡이라는 복음주의적 해석을 하는 경우다. 출애굽 후 시내광야에서 40년간 먹인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최후 만찬에서 이것은 내 살이라고 준 떡과 연결 짓고 "내가 곧 생명의 떡 이니라" (요 6:48)고 한 말씀을 근거로 예수께서 생명의 떡 산 떡으로 말한다. 물론 예수께서 하늘에서 온 생명의 떡이 맞지만 이 사실이 교리화되면 교리속에 갖혀 생명력을 잃고 만다. 오병이어 기적이라고 불리는 이 이야기를 앞의 네 관점으로만 보면 마태 공동체가 쓴 이 이야기로 전해 주고자하는 메시지가 왜곡 될수 밖에 없다.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당시 갈릴리 지역에 살던 오클로스와 오클로스로 살며 하나님 나라복음을 전한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 또한 모티브가 된 오병이어의 관계를 지금 이 자리에서 통섭적으로 살펴야 된다고 본다. 그래야만 그 당시 오클로스로 살면서 오클로스 속에서 그들을 긍휼히 여겨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속박으로 부터 해방시키는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한 예수께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그분 안에 그 분이 우리안에 생생히 살아 숨쉬지 않겠는가?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면전에 살아 숨쉬는 예수께서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