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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

이 땅과 하나님나라의 생태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0 목록 댓글 0

 

이 땅과 하나님나라의 생태


이 글에서 굳이 생태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생태라는 말이 유기체나 그 무리가 자신을 둘러싼 다른 유기체나  환경과 맺는 관계를 잘 나타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이 진화적 생태의 특징으로 형성되었음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는 생존과 종족 번식을 위해 생물학적인 자연선택적 진화 뿐만이 아니라 집단을 이루고 관계를 맺는 축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오늘 날에 이르기 까지 경쟁에 의한 적자 생존 그리고 약육강식, 집단의 힘을 키우고 안정시키기 위한 하이라키적 권력구조와 그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상위 계층의 하위 계층에 대한 군림과 착취 형태로 진화되어왔다. 생물학적 진화는 차치하더래도 사회제도와 종교제도가 어떻게 진화하던 이 계층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봉건제가 민주공화제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선출된 권력일 뿐 권력의 계층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바티칸 중심의 종교권력을 모든 신자에게 돌려 준다던 중세의 종교개혁에서도 제네바 시의회와 성밖 농노들간의 종교적 권력구조는 더 강화되였고 여전히 농노들은 청부론을 앞세운 신흥 자본가들의 착취 대상이였다. 문명적 진화가 인류의 고통을 해소하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세계를 건설했다고는 볼 수 없다. 무한 경쟁과 착취 시스템에 내 던져진 인류는 경쟁에서 지고 하위 계층의 나락으로 떨어져 상위계층을 유지하는 착취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 땅에서는 패자의 논리라고 승자들이 비웃을 수도 있겠다. 이러한 계층적 권력구조를 더 공고히하고 합리화하는 것은 늘 교육과 선발 그리고 종교사기가 감당해 왔고 이 시스템에서 이탈하는 순간 생존이 위협당한다는 공포마케팅으로 순치되고 적응되도록 무의식 속에 세뇌되어 왔다. 진화적 생태는 이렇게 하이라키적 구조로 이루어져 누구도 그에 항거하지 못하도록 세뇌되어  인류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오늘날에 이르게 되였다. 무의식에 잠재된 그대로 훈련된 투견이 되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그리고 국가와 국가간에도 서로 우두머리가 되려고 피튀기는 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진화되어온 하이라키적 권력구조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형편 없이 무너져 버린다.  요한과 야고보의 엄마이며 예수님의 이모인 살로메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새로운 유대왕의 탄생으로 오해하여 혈연 지연 모든 것을 동원해 예수님의 오른 쪽과 왼쪽에 하나씩 앉혀 달라고 말 하자 예수께서는 그 자리가 어떤 고난의 자리인지 어떤 잔인자 말 해주지만 윗자리를 탐하는 살로메와 제자들의 눈과 귀를 가려 알아듣지를 못하고 그 잔을 기꺼이 마시겠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오른 쪽과 왼쪽에 누가 앉게 될지는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나라에서는 내새끼 어떻게든 잘되게 해 보려는 치맛바람이 통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 이상 경쟁이 없음으로  경쟁으로 인한 승자와 패자가 사라지고 착취하는 상하 계층의 구분이 없는 은혜의 평등 원리만 작동하는 은혜생태다. 
이 땅의 진화생태에서는 경쟁하며 끝 없이 올라가야지만 살 수 있고 그 오름과 생명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진화할 필요없이 누구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은혜생태인 것이다. 하나님나라에서 관계의 원리는 절대 타자로서의 경쟁을 통한 신분상승과 생존이 아니라 자타가 하나되는 평등과 사랑인 은혜 생태다. 포도원의 품군들이 먼저 들어가려고 그리고 더 많이 일하려고 경쟁의 수고를 할 필요 없이 부름에 응해 그 안에 있기만 하면 똑같이 누리는 은혜 생태인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 못하고 자리다툼하는 제자들을 향해  "이방인의 왕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백성을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일 너희가 으뜸이 되기를 원하거든 반드시 종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라.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의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목숨을 내주려고 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마20:25~27)  제자들은 이 무슨 쌩뚱맞은 소리냐고 의아해 했을 수도있다.  배고품도 헐벗음도  참으며 예수님을 따른 것은 그 많은 이적을 행하고 지혜로운 이 분이 유대의 왕이되면 새로운 왕국의 개국공신이되여 한자리씩 차지하고 섬김을  받으며 거들먹 거리며 살려는 꿈에 부풀어 있는데 종처럼 섬기는 것을 넘어 거기다 목숨까지 내주고 죽어 버린다고?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그 때는 그랬다. 제자들 모두 이 땅의 진화적 생태에 길들여져 어떻게든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의 후광을 업고 개국공신으로 높은 자리를 얻어 그 권력으로  떵떵거리며 살 생각만 있었지 하나님나라에 대한 관심과 이루려는 의지도 없었다.  예수께서 유대의 왕이 되기를 원했고 서로 높은 자리를 탐하였으나 예수께서 관원들에게 붙들려 온갖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허망하게 죽자 두려움과 실망으로 멀리 도망갔던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뒤 부활과 성령을 체험하고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들의 실망은 새로운 소망이되였고 두려움이 믿음의 용기가 됐으며 다스리는 우두머리 대신 사랑으로 섬기다 고귀한 순교의  피를 흘리며 목숨을 내어준 사도들이 되였다. 그렇게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고 그 모델로 교회공동체가 형성되였다. 거기에는 더 이상 경쟁을 통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이 땅에서의 진화적 생태는 없다. 높은 자리에서 권력으로 군림하며 다스리기 보다 낮은 자리에서 종이되어 공동체를 섬기는 하나님나라의 생태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이 땅에서의 군림과 착취로 귀결되는 진화적 생태가 무너지고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여 은혜와 평등, 섬김이라는 하나님나라의 생태가 이루어진 것이다.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진화할 필요 없는 인류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새로운 판이 펼쳐진 것이다. 이제는 모두 예수그리스도 안에 하나님나라 생태로 펼쳐진 새로운 지평과  판위에서 아버지의 은혜와 영원한 생명을 누리길 소원합니다. 이 밤 모두 주 안에서 평안하소서.
2020. 12. 7 평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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