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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

복마전이 된 성전 정화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1 목록 댓글 0

 

복마전이된 성전의 정화


마태복음21:12,13에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유대의 심장 성전을 정화하신 이야기가 나온다.
예루살렘 성전 (히브리어: בית המקדש, 벳 하미크다쉬, 거룩한 집})은 하나님의 "발등상(쉐키나)"으로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거룩한 곳이며 임재하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곳, 기도하며 예배드리는 집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 다스리는 능력과 예배라는 말로 상징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모세의  성막과  실로,  노브, 기브온 성막 시대를 마치고 성막(Tabernacle)의 발전 형태로 솔로몬 왕이 기원전  957년 7년 동안 지은 제1성전 (왕상6:1-38),  제2 성전인 수룹바벨 성전(B.C.516; 스6:15-18), 그리고 제3성전인 신약시대의 헤롯 성전(B.C.20-A.D.63)이 있었다. 헤롯 성전은 70년 유대 독립 전쟁이 진압될 때에 로마 제국에 의하여 무너졌으며, 흔히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는 서쪽 벽만이 남았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해 정화하신 성전이 헤롯성전 이였다.
예수님 당시의 헤롯성전은 이방인 이두매(Idumea) 출신인 헤롯이 정치적 목적인 유대인들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건축하였기 때문에 성전 고유의 의미는 퇴색 되고 이미 강도의 굴혈이 되어 있었다. 성전이 복마전이 되고 타락한 정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것이 환전상들 이였다. 유월절이 되면 유대땅에 살던 유대인 뿐만아니라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 디아스포라들이 순례를 위해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모여들어 성전세를 내고 제물을 드렸다. 당시 성전세는 규례에 따라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 한 세겔은 이십 게라)을 냈는데 (출 30:13-14) 각 지에서온 디아스포라들은 자신이가진 화폐를 두로세겔로 환전하여 성전세를 내거나 비둘기 등 제의에 필요한 것들을 샀다.
두로의 세겔은 페니키아의 신인 멜카르트 (Melqarth/Heracles or Baal)의 머리 형상이 새겨져 있으며  94퍼센트의 순수한 은으로 주조되었다. 성전의 유통화폐로 우상이 새겨진 두로의 세겔이 사용된 것은 은의 가치가 이미 성전의 고유 가치인 하나님께서 임재한 거룩과 예배의 가치와 치환되였음을 알 수 있다. 성전을 고리로 하나님이 도구화되어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환전상 상인 순례객들이 복마전을 이룬 것이였다. 예수께서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굴혈이 되였다고 외치며 환전상과 상인들의 상을 뒤엎고 제의에 쓰일 각종  짐승들을 몰아 내였을 때 그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그리고 겉옷을 땅에 깔아 영접하며 호산나를 외치던 무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수백년간 성전 중심의 종교 시스템에 매몰된 사람들이 강도의 굴혈이 되였다는 것을 의식이나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황당하고 놀라고 어처구니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여전히 좌판이 벌어지고 돗대기 시장이 펼쳐져 70년 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나치 독일 친위대 장교 겸 홀로코스트 실무 책임자로  유대의 법정에 섰던 아히히만의 재판을 지켜보고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을 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아히히만은 1961년 4월 11일 시작되어 56일간 지속된 재판에서 5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도 본인은 단지 시스템 속에서 상급자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무죄를 주장한 것이다. 이를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이 자행된 것은 히틀러와 괴벨스 등 나치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며 대전 당시 직간접적으로 전쟁체제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 즉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체제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나치의 지도자들에게 돌리려던 독일 국민들로 부터 그리고 책임자를 특정 지울 수 없는 이스라엘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공격에도 불구하고 '악의 평범성'은 큰 충격을 주었고 오랜 격론과 실험 끝에  '악의 평범성'의 원인으로 지목한 '사유의 무능력',  '말하기의 무능력', '소통의 무능력'이 널리 받아드려진다. 제도나 시스템 어느 상황에 매몰되면  '악의 평범성'은 특별히 사악한 의도나 악의적인 동기 없이 그저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하지 않을 때 그리고 말 없이 묵묵히 수행하고 소통하지 않으며 판단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성전의 복마전에 관련된 종교지도자들과 환전상 및 상인들 그리고 순례자들 모두  하나님이 사라지고 오랜 세월동안  지속된 당시의 성전중심의 종교시스템에 매몰되어 사유와 말과 소통을 잃고 '악의 평범성'에 지배된 상태였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예수께서 그것을 간파하시고 성전을 형해화한 '악의 평범성'을 드러내고 자각시켜 벗어나게 하기위해 유대의 심장 예루살렘 성전의 한 복판에서 기도 하는 집을 강도소굴로 만들었다 외치며  주체적 사유를 촉발시키고 말을 살려내고 소통의 통로를 뚫어준 것으로 보인다. 불씨를 던져 불을 일으킨 것이다. 다 타 없어지고 돌 틈에 녹아내린 금을 찾으려고 돌을 헤집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게 파괴 되고 형해화된 성전중심의 종교가 사라진 것은 70년경의 일이다. 복마전이된 예루살렘성전과 요즘 여론이 들끓는 검찰조직과 오버랩 되는 것은 왜 일까?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정의를 세우고 인권을 보호해야 할 검찰조직이 오랜 전관카르텔에 의한 영업시스템에 매몰되어 그 본연의 가치를 내 팽개치고 오로지 돈과 권력만을 쫒는 '악의 평범성'에 젖어 있는 모습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전의 모든 가치를 은의 가치로 치환했던 그들과 너무 닮아있지 않은가? 물론 공수처를 설치하여 권력을 분산시키고 감시체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완전히 기소와 수사를 분리시켜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등 제도를 바꾸는 일도 전관카르텔에 매몰된 검찰조직의 '악의 평범성'을 제거하는데 중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본연의 자리와 가치를 각성하여 의식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도 돌아보아 어느 한 시스템에 매몰되어 사유불능 상태로 '악의 평범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 볼 일이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한 복판에 서있지 않고 방관자로 주변에 서 있는 것, 거대 소비자본주의 한 복판에 휩쓸려 떠 내려가며 홈쇼핑 체널 앞에서 열심히 버튼을 누르고 종일 인터넷 쇼핑몰을 누비고 다니는 것, 하나님나라 복음을 소유한자로 하나님나라 살아내기에 무관심 한 것 등 우리를 거대한 시스템 속에 가둬 매몰 시키는 것은 생각 보다 많다. 오랫 동안 그래와서, 다들 그러니까, 시킨대로 그냥  이제는 정답이 아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휘두르던 채찍이 우리의 삶에 쳐지고 그렇게 단단하다고 믿은 내가 만든 상을 엎고 흔들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어디로  향해 가는지 사유가 촉발되고 입을 열어 위와 아래로 소통함으로 올곧게 하나님나라를 살아갈 수 있길 소원합니다. 주 안에서 평안한 밤 되소서🙏
2020. 12. 13 평화 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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