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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

θέλημά του Θεου 델레마 투 데오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6 목록 댓글 0

θέλημά του Θεου 델레마 투 데오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θέλημά του Θεου)
(마26:31~45)
경계 • 한계 • 초월
                            평화 황호건


예수께서 유월절 만찬을 마친뒤 제자 셋과 함께 겟세마네란 곳에 가서 기도를 하신다. 죽음을 앞둔 짧은 이 세번의 기도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먼저 인류의 이 땅에서의 삶에대한 경계와 한계가 나타나 있다. 기도하기전  예수께서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고 같이 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신다. 여기 까지가 인간 예수로서의 경계와 한계다. 예수께서 상징적으로 소외된 모든 인간들의 실존적 한계상황을 여실히 드러낸다. 인류는 수 만년 동안 생존을 위해 위기의 순간에 반응하기 위해 교감신경계에 '투쟁-도피 반응'을 하도록 진화 되어 왔다. 위기를 느끼면 불안과 공포 반응을 통해 뇌의 시상하부를 자극하게 되고 시상하부의 명령에 따라 부신에서 스트레스 홀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되어 동공 확장,  근육혈관 확장, 혈류 증가, 심박수 증가 등이 일어나 맞서 싸우든지 도망치든지 할 수 있는 '투쟁-도피 모드'가 된다. 기도를 보면 예수께서 죽을 처지에 놓이면서 '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극한의 도피(회피)모드가 작동한 것을 볼 수 있다. 죽음 앞에서 고민하고 두려워 하는 인간실존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러한 반응을 틸리히는 모든 소외된 인간이 가지는 비존재(죽음)에 대한 한계로 말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소외된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새로운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죽음이라는 한계와 경계 앞에서 모든 인간들이 가지는 불안과 공포 그에 따른 반응을 새로운 존재로 오신 예수께서 똑같이 한다는 데서 인류는 희망을 가진다.
아하! 우리와 같이 예수께서도 두렵고 떨려서 피하고 싶어 하셨구나! 그렇다면 예수께서 그 한계와 경계를 뛰어 넘었다면 나도 뛰어넘을 수 있겠구나! 이러한 소망과 함께 확실한 증거가 또한 기도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델레마 투 데오 θέλημά του Θεου) 완전하게 자신을 비움(케노시스 κενοσις)으로 아버지께 맡기며 실존적 한계를 뛰어 넘었다. '한계와 경계의 속박으로 부터의 해탈', '불안과 공포로 부터 완전한 평안으로의 열반', '소외된 이원적 한계상황에서 아버지와의 불이원의 합일' 이렇게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이루며 새로운 존재로 건너셨다. 이렇게 비움과 맡김으로 건너셨다. 이제 우리도 이러한 깨달음의 믿음으로 바움과 맡김의 새로운 존재의 길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안나님께서 나이들면서  자신을 내려 놓고 아버지께 맡기니 평안해졌다고 한다. 안나님은 이제 하산해도 된다고 본다. 예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극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기도할 때 제자들은 대조적으로 자고 있었다. 가장 아끼던 제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예수께서 죽음을 앞둔 극한 상황에서 기도로 싸울 때 세번이나 깨웠어도 잠을 자고 있었다. 완전 멘탈 갑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 본능적으로 안된다. 그럼에도 이 위기상황에서 교감신경계의 '투쟁과 도피반응 모드'가 다운되고 '이완 반응 모드'의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 되어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새로운 존재로 건너 가기전 소마틱한 상태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상태를 유지한 것이다. 예수께서 소외상태의 인류를 대표해 상징적으로 최고의 '투쟁-도피' 모드를 보여 줬다면 제자들은 최고의 '이완 반응' 모드를 보여 주고있다. 제자들의 이완상태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자 치유하는 사람이나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의 로망이다. 그런다고 제자들이 잠을 잔 것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상황에서의 이완반응 만을 말한것이다. 오늘의 말씀에서 모든 인류는 고금의 영적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소마틱한 거친단계의 깨어 있음으로 부터 정묘한 영적인 깨어있음의 단계로 나아가야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 깨어있음이 새로운존재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자들은 아직의 경계에 머물어 자고있는 것이고 예수께서는 이미 건너신 것이다. 이 잠자던 제자들이 영적으로 깨어나 경계와 한계를 뛰어넘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써갔는지 그 대서사를 살펴보시기 바란다. 우리 또한 비록 잠을 잘 수도 흔들릴 수도 넘어질 수도 있으나 깨어 잠자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예수께서 우리의 주 되심을 믿고 따라 한계인 소외를 극복하고 아버지와 하나되는 영광과 평화 기쁨을 누리시길🙏
2021.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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