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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

십자가 안에 십자가 없다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1 목록 댓글 0

「십자가 안에 십자가 없다」

 

「십자가 안에 십자가 없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이 되는 상징이다. 그런 십자가를 붙들고 씨름하기를 거의 일주일. 이 십자가 사건에 대한 성경 말씀 그리고 해석 또는 교리,  케리그마 어디를 뒤져봐도 고착된 내 개념과 문자로만 있을 뿐 내 삶과는 무관하였다. 그래서 딸에게 ' 십자가 안에 십자가 없다'라고 톡으로 보내니 '그럼 어디에 십자가가 있어요?'라고 묻는다. 십자가는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믿음 가운데 생생히 경험하는 자아의 죽음과 비움, 두려움,  삶의 고통, 부르짖음에 있다.  십자가는 사건의 해석이나 교리 케리그마가 아니라  생생한  신앙경험이다. 십자가를 붙들고 한참 씨름 하다보니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Ἠλὶ  ἠλὶ λεμὰ σαβαχθάνι)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주님의 절규에서 딱 걸려버렸다. 왜 아버지가 아들을 버렸지? 고통받는 것으로 충분한데 왜 버리기 까지?  이 절규로 주님의 십자가는 실패한 것인가? 왜 저자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는 이 절규를 시편22편 1절 
( 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
그대로 가져다 썼지? 자꾸 되씹고 되씹는 중에 절규 속의 하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느낌이 떠 오른다. 전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만을 보았지 하나님은 생각도 못했다. 그 때 하나님은 저 멀리 계셨다. 그런데 주님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부르는 그 절규 속에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를 비워 만드신 세상 그 세상으로 아들을 내어주시고 그 아들이 권력의 폭력앞에 처참하게 고통 당하는 그 모습을 보며 아들 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아버지를 본다. 끝내 그 손을 놓아 버리는 아버지의 고통을 본다. 등에서 땀이 난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고 버리시고 이제 무릎에서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아들을 보며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신다. 누구도 죽음의 순간을 경험할 수 없다. 죽는 과정의 고통만 경험한다. 죽음의 고통 슬픔은 살아 바라보는 아버지만이 오롯이 겪으신다. 십자가 안에는 십자가 없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아들과 함께 고통 당한 하나님께서 똑같이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고 고통 당하신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계시냐고 왜 침묵하시냐고 부르 짖을 때 주께서 우리 보다 더 간절히 부르짖는 그 절규속에 십자가가 있다. 감전 된듯 전율하게 하는 하나님과 주의 사랑이 십자가다. 이 생생한 경험속에 십자가가 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맹골수도 그 차거운 바다  인간들의 탐욕과 함께 침몰하던 세월호. 그 차거운 물 속에서 칠흑 보다 어두운 두려움과 고통으로 살려 달라고 절규하던 그 아이들을 품에 안고 안타까움에 눈물 흘리며 그 고통을 함께 하신 하나님! 더 크게 절규하신 주님! 군화발과 총 앞에 맞서 싸우다 스러져가는 미얀마 민중의 부르짖음 속에, 그들의 고통에 함께 하시는 아버지!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인으로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엘리 위젤이 지은「밤」 이라는 작품에 네덜란드 사람의 탈출 음모에 연루된 두 명의 유대인과 그 사람의 시종이었던 피펠이라는 소년이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 명의 유대인은 빨리 숨이 끊어졌지만, 몸무게가 가벼운 피펠은 쉽사리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있던 엘리 위젤의 뒤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도대체 어디 계시는 것인가?”
그 때 위젤은 자신 속에서 응답하는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하나님은 여기에 계신다. 지금 저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의 고난의 현장에, 눈물의 현장에  함께 계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버림 받은 주님의 외침은 아버지의 눈물이였다.
십자가안에 십자가 없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이 땅의 고난과 역사에  함께하시는 하나님나라의 현현 속에 있다.
양이 제 갈 길로 가듯 하나님으로 부터 소외 되어 고통 가운데 버려진 모든 인류를 대신해 아버지께 부르짖는 주의 절규 가운데 있다. 
나 같은 자가 고통가운데 버려졌을 때  대신 부르짖고  함께하신 사랑가운데 십자가는 있다.
모두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달리신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지금 여기에서 나를 죽이고 비우며  '아버지여 불쌍히 여기소서! 아버지여 불쌍히 여기소서! ' 삶의 무게를 못이겨 부르짖는 기도 가운데 현존의 은총이 있기를...🙏
2021.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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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씨알

    21.03.28 23:02

    첫댓글 몰트만은 아들이 수난당할때 아버지 자신이 아들의 버림받은 상태로 인하여 고통 당하신다.
    아들의 죽음 속에서 죽음은 하나님 자신에게로 오며 아버지ㅡ는 버림받은 상태로 인하여 고통 당하신다.
    아버지는 버림받은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 가운데서 아들의 죽은을 고통당하신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은 하나님의 자기 자신에 대한 gegen•über sich selbst 활동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수난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극복하시며 지기 자신을 결단하시며,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을 자기 자신이 짊어지신다.
    법적으로 볼 때 인간에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을 그는 자기자신의 것으로 간주하신다.
    자유의 하나님, 참된 하나님은 세계와 세계사에 있어서 그의 힘과 영광을 통하여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수치스러운 나무기둥에
    나타난 그의 무력감과 죽음을 통하여 인식된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자기 진술에 속한다. - 위르겐 몰트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中

    장로님의 세상을 보는 연민과 사랑이 그리스도를 닮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있습니다.

    .

    답글

     

  •  평화!

    23.02.06 01:03

    十字架 卽非 十字架 是名 十字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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